‘꼿꼿한’ 이해찬의 ‘사과의 역사’

입력 2019-10-30 17:42 수정 2019-10-30 18:44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0일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기 기자간담회에서 “여당 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특유의 완고한 카리스마를 지닌 이 대표가 몸을 낮추는 일은 이례적이다. 특히 조국 사태 내내 강경 기조를 지켜왔던 이 대표였기에, 당에선 이 대표의 사과 발언이 더욱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0일 국회에서 가진 정기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민주당 관계자는 “정치인이 한 번 사과하기 시작하면 계속 떠밀려 사과를 할 수 밖에 없다”며 “이 대표는 상대적으로 사과하는 데 신중한 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7선의 노련한 정치인 이 대표의 ‘사과’에는 늘 이목이 쏠렸다. 이 대표는 특히 여야간에 맞붙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쉽게 물러서거나 사과하는 일이 없었다.

과거 노무현정부 국무총리 시절 이 대표는 지금보다 훨씬 ‘꼿꼿한’ 태도로 한나라당과 자주 격돌했다. 유명한 사례는 2004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성적으로 비하한 패러디물이 청와대 게시판에 게재된 것을 두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의원과 설전을 벌인 것이다. 박순자 의원이 “야당 대표에 대한 인권 유린”이라며 사과를 요구하자 “수천만명 네티즌 중 한 사람이 한 행위에 대해 청와대 수석들이 다 책임을 진단 말이냐”며 맞받아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 대표는 결국 “답변이 적절하지 않았다”며 사과했다.

이 대표의 사과 거부로 국회가 14일 간 파행되는 일도 있었다. 2004년 유럽 방문 당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는 퇴보한다. 한나라당이 나쁜 것은 세상이 다 안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자, 한나라당은 즉각 반발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이 대표가 사과 없이 노무현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대독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시정연설 중 전원 퇴장하는 일도 벌어졌다. 오히려 이 대표는 “한나라당은 지하실에서 차떼기 하는 당인데 어떻게 좋은 당이라고 할 수 있냐”며 역공했다. 한나라당이 등원을 거부하며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자 14일 만에 결국 “지난 대정부 질문에서 제 답변이 지나친 점이 없지 않았다. 진심으로 ‘사의(謝意)’ 를 표하며 국회가 하루빨리 정상화하길 바란다”고 성명을 냈다. ‘사과’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사의’라는 표현을 쓰면서 제한적으로 사과한 것이다.

이 대표가 늘 사과에 인색했던 것은 아니다. 정치적 쟁점이나 논란이 되는 사안과 달리 ‘골프 파문’ 등 본인의 잘못이 분명한 사안에 대해선 신속하게 사과했다. 2005년 ‘식목일 골프’가 대표적이다. ‘식목일 골프’는 2005년 4월 5일 강원도 양양과 고성 산불이 번지던 때에 골프를 쳤던 일이다. 논란이 불거진 뒤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 대표는 “안이한 판단으로 국민께 걱정을 끼친 것에 사과를 드리며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저 자신을 근신하겠다”고 말했다. 사과를 안하고 버틸 것이라는 야당의 예상과 달리 사과 요구를 깨끗이 받아들이자 관련 문제를 집중 추궁할 예정이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식목일 골프’에 한 차례 고개를 숙였던 이 대표는 2006년 ‘3·1절 골프’로 또다시 물의를 일으키자 즉각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그는 입장문을 내고 “사려 깊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린 점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본인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 해외 순방 이후 말씀 드리겠다”고 한 뒤 결국 물러났다.

지난해 “정치권에 정신 장애인들이 많다”는 발언으로 장애인 비하 발언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곧바로 몸을 낮췄다. 이 대표는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깊은 유감을 표하며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공식 사과문을 냈다. 이후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부적절한 표현으로 장애인들에게 대단히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거듭 사과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