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허지웅이 서유석의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한국의 386세대에 유감이 많다”고 했다. 앞서 방송인 김어준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이 노래를 열창하는 음성을 라디오에서 두 차례 띄웠다. ‘홀로 아리랑’은 그간 서초동 집회에서 ‘조국의 노래’로도 불려왔다.
허지웅은 지난 29일 인스타그램에 “저는 아무리 지독한 악플러도 이해할 수 있지만 윤리적, 자본적 헤게모니를 모두 거머쥘 수 있었고 그래서 영원히 은퇴하지 않을, 전 세계 유례없는 한국의 386과 그의 그루피(groupie·팬)들에 대해 유감이 많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병의 재발 없이 계속 살 수 있다면 젊은 세대의 본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며 “나는 그게 너무 절실했는데 그런 386들은 사기만 쳤다”고 했다. 386세대에 대해서는 “한국 역사상 최고의 꿀을 빨았으면서도 세상 피해자인척하느라. 부동산이 있으니까”라고 덧붙였다.
그는 “영상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가사. 손잡고 갈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이라며 게재한 동영상에 대해 설명했다. 영상에는 허지웅이 ‘홀로 아리랑’을 흐느끼듯 열창하는 모습이 담겼다. 웃통을 벗고 노래를 부르던 허지웅은 얼굴을 붉히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영상은 게시 후 수시간 만에 삭제됐다.
허지웅이 부른 노래는 앞서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어준이 소개한 ‘조국의 노래’이기도 하다. 김어준은 지난 24일 정경심 동양대 교수 구속 뒤 라디오에서 “조국에게 본인이 9년 전 불렀던 이 노래를 다시 한번 띄운다”며 조 전 장관이 홀로 아리랑을 노래하는 음성을 틀었다. 그러면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어준은 지난 15일에도 “(조국 전 장관을) 상대적으로 잘 알았던 입장에서 더 버티라는 소리를 하지 못하겠다”며 해당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라디오에 공개된 음성은 토크쇼 영상의 일부다. 영상에는 2011년 3월 조 전 장관이 사회를 맡은 ‘체인지 2012 토크쇼’에서 무반주로 홀로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이 담겼다. 당시 조 전 장관은 “‘홀로 아리랑’이라는 노래다. 들어보시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이 노래를 택했다. 음치의 특징이 반주를 못 따라가기 때문에 반주 없이 마음대로 부르겠다. 가사도 못 외우기 때문에 보고 하겠다”고 말한 뒤 열창했다.
‘홀로 아리랑’은 ‘아리랑 고개로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다 함께 가보자’ 등의 가사로 구성돼 있다. 이 노래는 지난해 2월 북한 예술단이 강릉에서 부른 노래로 한국의 정서를 보여주는 노래로 꼽힌다. ‘홀로 아리랑’은 2002년 김연자가 처음 평양에서 부르고, 2005년 조용필이 다시 불렀다.
조국의 ‘홀로 아리랑’ 영상은 조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거론될 때부터 언급됐다. 권향엽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은 조 전 장관 취임 직전인 지난달 7일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를 마친 아침, 조국 교수의 노래가 절절한 울림으로 다가온다”며 해당 영상 링크를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이 영상은 조국 수호 집회에도 수차례 등장했다. 지난 5일 서초동 집회에서 주최 측은 현장에 4개의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해당 동영상을 여러 차례 틀었다. 이후 이어진 집회에서도 영상이 상영되거나 시위자들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눈시울을 붉히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조 전 장관은 386세대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1980년대 대학에 다니며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다. 이번 ‘조국 정국’에서 청년세대의 분노는 조 전 장관에게로, 그리고 조 장관이 대표하는 386세대를 향해 퍼져나갔다는 평가가 있었다. 386세대가 우리 사회에서 주도적 세대로 장기 집권하고 제도에 내재된 ‘합법적 불공정’과 특권으로 기득권을 형성했다는 주장이다. 서병수 전 부산시장은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조국은 우리에게 대한민국 386 정치권력의 민낯을 보여줬다. 그 386 정치권력에 부화뇌동하는 분이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 또한 까발려줬다”고 조 전 장관의 사퇴를 평가했다.
허지웅이 조국의 노래인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386세대에 “유감이 많다” “사기를 쳤다”고 말한 것도 조 전 장관과 386세대를 향한 실망감으로 비춰진다. 특히 “영원히 은퇴하지 않을, 전 세계 유례없는 한국의 386”이라는 표현은 기득권을 형성한 386세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었다. 허지웅은 게시물에 조 전 장관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386세대와 ‘홀로 아리랑’ 두 가지가 조 전 장관에 해당되기에 그가 최근의 조국 사태와 관련해서 우리 사회와 현 정권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는 식의 해석이 이어졌다.
이후 게시물을 삭제했던 그는 30일 오후 또 다른 글을 올렸다. 허지웅은 ‘홀로 아리랑’ 게시물과 관련해서 “재발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평소 눌러놓았던 세상에 대한 답답함이 치밀어 올라 올렸던 영상과 글”이라고 했다. “요 며칠 쏟아진 아프고 슬픈 사연들에 답장을 하면서 압도됐던 것도 있다”면서 “뭔가 해석이 분분한 것 같다”며 게시물 관련 여러 해석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걱정 마세요. 지금은 제가 더 건강하니, 걱정을 제가 할 테니 여러분은 꼭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혈액암 투병 사실을 알린 허지웅은 건강이 회복돼 이달 들어 방송 활동을 재개했다. 허지웅은 지난 18일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혈액암 투병 뒤 암 환자들에게 각종 메시지를 받고 있으며 이들에게 답장해 용기를 주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