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로 해달라”던 법무부 훈령…의견도 안 받고 협의 거쳤다?

입력 2019-10-30 17:35 수정 2019-10-30 19:50

법무부가 30일 제정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훈령은 사건 관계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검찰의 수사 상황을 전면 비공개하고, 오보 언론에 대한 처벌적 수단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같은 법무부의 훈령 제정은 절차와 내용 측면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법무부는 훈령 제정까지 “검찰, 법원, 언론, 대한변호사협회, 경찰,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지만 사실과 달랐다. 언론학계는 “정부가 언론 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대한변협은 30일 “법무부에 의견을 보낸 적이 없다”며 법무부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대한변협 핵심 관계자는 “(법무부 측이) 지난 8월 ‘공보준칙’을 전달하며 ‘비밀로 해주세요, 공개하지 마시고요’라고만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변협은 이후 관련 규정과 조항에 대하여 의견을 보낸 적이 없다”며 “오보 시 출입 제한과 관련된 내용은 오늘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큰 논란이 된 ‘오보 시 기자 출입 제한’ 조항은 기존의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에도 있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 조항과 관련해 오히려 검찰 측의 반대 의견을 접수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대검 고위 관계자는 “‘언론 종사자의 브리핑 참석과 출입 제한은 기자단에서 취할 조치이며, 언론은 용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법무부에 냈다”고 말했다. 언론에 스스로 맡겨야 할 대목일 뿐 검찰이 입장을 낼 성격은 아니라는 의견을 폈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법조 기자단의 의견 수렴을 위해 제시했던 훈령 초안에는 ‘오보 시 출입 제한’ 조항이 없었다.

언론학계에서는 법무부의 새 훈령에 언론자유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오보는 정보 접근이 어려운 상황, 한정된 취재원, 시간적 제약으로 생기곤 한다”며 “저널리즘의 역사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엔 언론중재법이 있어서 피해자에 대한 권리구제나 기사 정정, 언론사 자율적인 기사 삭제 조정 등이 이뤄진다”며 “오보한 기자에 대한 처벌적 수단으로 출입을 금지하는 건 과도한 침해”라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법무부의 새 훈령에 대해 “국가 기관이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주객이 전도됐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사건 관계인과 기관의 실명을 비공개하는 등 공개금지 정보를 확대한 데 대해 “정치인 등에 대해서는 국민적 알 권리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무부가 ‘오보’라는 말을 썼느냐, 황당하다”며 훈령의 내용을 되묻기도 했다.

법무부는 앞으로 검사와 검찰 수사관이 기자와 개별적으로 접촉할 수 없게 했다. 전문공보관이 아니면 형사사건의 내용을 언급하는 행위도 금지했다. 그간 검찰이 비난받던 ‘피의사실 흘리기’ ‘망신주기식 수사’를 근절하려는 개혁 조치라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오히려 검찰 개혁에 역행하는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과거 정치인, 재벌 등 공적 인물에 대한 비공개 조사 당시 ‘깜깜이 수사’라는 비판이 많았다”고 말했다.

박상은 구승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