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을 선도해야 할 공공기관의 여성 임원 비율이 사기업보다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이 민간기업보다 여성의 승진 소요기간이 더 길고,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문화 때문에 오히려 유리천장이 더욱 공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 산하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전문위원회는 30일 2019년도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올해 기준으로 전체 공공기관 및 500인 이상 사업장 1689곳, 공공기관 332곳, 지방공사·공단 43곳 등 총 2064곳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조사결과 공공기관의 여성 관리자(임원) 비율은 18.8%로, 민간기업(22.0%)보다 낮았다. 지방공사·공단은 6.82%로 민간기업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특히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여성 관리자 고용기준 충족 현황을 살펴보면 공공기관과 지방공사·공단의 여성 관리자 미달 비율은 각각 61.8%, 64.9%에 달했다. 민간기업(39.9%)보다 20%포인트 이상 높은 것이다. 미달 사업장은 여성 관리자 비율이 산업별·규모별 전체 평균 대비 70%에 미치지 못한 곳을 뜻한다.
이는 양성평등에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이 오히려 여성 임원을 뽑는데 더 인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여성 친화 정책을 쓰겠다고 한 정부의 다짐도 무색해진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국무회의에서 2020년까지 공공기관의 여성임원을 20%까지 높일 수 있도록 여성 관리자 임용 목표제를 적극 추진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공공기관에서 여성 임원이 작은 이유는 중간 관리자의 승진 소요기간이 사기업보다 늦고, 보수적인 업무·인사 문화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노총이 지난달 노조 소속 공·사기업 12개 업체를 조사한 결과, 과장에서 차장 승진 소요 기간이 민간부문은 6.1년이었지만 공공부문은 6.6년이었다. 한국노총이 이들 사업체에서 한 설문에서 ‘주로 남성이 주요부서 또는 핵심업무에 배치된다’고 응답한 여성이 민간부문의 경우 61.9%였지만 공공부문에선 68.1%나 나왔다. 승진도 늦고, 핵심업무도 맡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임원이 되는 기회도 줄어든다는 의미다. 또 사기업의 경우 오너의 재량에 따라 우수한 여성 인재를 고속 승진시키거나 외부인사로 영입할 수 있지만 인사 시스템이 경직된 공공기관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사회간접자본이나 연구소 등에 주로 설립된 공공기관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 조사를 함께한 노사발전재단 관계자는 “이런 공공기관에선 남성들이 많이 근무하고, 자연스럽게 임원도 남성을 많이 뽑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3년(2017~2019년) 연속 여성 고용기준에 미달하고, 개선 노력이 미흡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제 조사를 거쳐 내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명단을 공표할 예정이다. 또 여성 고위 관리자를 임용하지 않은 공공기관에 대해선 1인 이상 임용하도록 하고, 여성 임원 임용실적을 주무부처 정부업무평가에 반영할 계획이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