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두고 좀처럼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보리스 존슨 총리와 영국 의회가 결국 12월 조기 총선을 선택했다. 존슨 총리와 유럽연합(EU)과 새 브렉시트 합의안을 마련했지만 영국 하원의 승인 거부로 또다시 브렉시트가 교착 상태에 빠지자 아예 새판을 짜기로 한 것이다. 브렉시트 수렁 속에서 치러지는 총선인 만큼 브렉시트 관련 영국 민심을 읽을 수 있는 ‘브렉시트 총선’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총선에서 드러나는 민심에 따라 브렉시트의 향배가 결정될 전망이다.
영국 하원은 29일(현지시간) 오는 12월 12일 총선을 개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단축 법안’을 찬성 438표, 반대 20표로 통과시켰다. 2022년으로 예정됐던 총선을 2년 6개월 가까이 앞당기는 셈이다. 브렉시트 시행 일정의 주도권을 하원에 내줬던 존슨 총리는 그간 국면 전환을 위해 ‘의회 해산’을 의미하는 조기 총선 찬반 투표를 밀어붙여 왔고, 네 번의 시도 끝에 목적을 달성했다.
존슨 총리는 이날 하원 의원 3분의 2 찬성이 아닌 과반의 동의만 얻어도 조기 총선을 치를 수 있도록 하는 ‘단축 법안’이라는 편법을 쓰는 등 조기 총선 개최를 위해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실제 조기 총선이 결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동당 등 야당의 입장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 딜(합의 없는) 브렉시트’ 우려가 사실상 사라진 상황에서 노동당 등은 이번 총선을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안을 무산시키는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총 650석인 하원 의석 중 보수당은 288석으로 과반에 미치지 못하고 제1야당인 노동당은 244석을 차지하고 있어 브렉시트를 향한 존슨 총리의 열망은 그동안 번번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야 모두가 이번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해 브렉시트 주도권을 쥐겠다는 심산이지만 지난 3년간 이어진 지리한 브렉시트 공방에 지친 영국 국민들이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주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현지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과반 정당이 없는 ‘헝 의회’ 구도가 재현될 경우 오히려 브렉시트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총선 결과에 따라 노 딜 브렉시트 발생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지난 29일 “EU 27개국이 브렉시트 연기를 공식 승인했다”면서도 “마지막 연장이 될지도 모른다. (영국은) 부디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달라”고 당부했다. 즉 브렉시트 마감시한은 내년 1월 31일로 일시 연장된 상태다. 존슨 총리가 12월 총선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영 정부·의회, EU 모두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지지부진한 교착상태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 또 어떠한 합의도 없이 EU를 떠나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