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판결 1년… 日, 전범기업 자산매각 촉각 “보복조치 검토”

입력 2019-10-30 16:57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가 지난해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 선고를 마친 후 법원을 나와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국민일보DB

한국 대법원이 일본 전범 기업들에게 강제징용 피해노동자에 대한 배상을 명령한 판결이 30일 1주년을 맞았다. 이를 국제법 위반이라 주장하며 수출규제를 단행한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의 자산이 강제 매각될 경우 추가 보복조치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올해 말이나 내년 1월쯤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측의 일본 기업 자산 강제매각 및 현금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등이 이날 보도했다.

앞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지난 5월부터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주식·특허권 등 자산을 압류하고 법원에 배상액 상당을 매각하는 현금화를 신청했다. 이들 기업이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버틴 데 따른 조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고(故) 여운택씨 등 4명이 일본 신일철주금(일제 당시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에서 여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자국 기업 자산의 현금화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 측이 일본 기업 자산을 매각하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거나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또 현금화 조치된 액수만큼 한국 측에 손해를 입히는 보복조치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요미우리도 배상 판결로 압류된 일본기업 자산이 이르면 올해 현금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일본 정부는 대항조치를 강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다만 일본 정부에도 현금화 시나리오는 피하고 싶은 일이다.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가 “루비콘강을 건너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한·일 관계는 아웃이다”라고 말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전날 내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해 “절대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며 “한·일 관계는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한국 정부 관계자도 “넘어선 안 되는 레드라인”이라면서도 “(삼권분립에 따라) 징용 피해자 측의 행동을 저지할 수단이 없다”고 아사히에 말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기업 자산 매각이 이뤄진다면 한·일 갈등이 한층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양국 간 갈등이 불거지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한국 국회가 한국 내 조치로 배상금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초당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며 “일본 정부는 일본 측이 배상금을 지불하는 방안에는 동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일본 정부도 더 이상의 진흙탕 싸움은 피하고 싶은 것이 본심이라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일본 시민단체들은 이날 강제징용 배상판결 1주년을 맞아 피고 기업 신일철주금 도쿄 본사 앞에서 책임 이행을 촉구하는 거리 선전전을 벌였다. 야마모토 나오요시 ‘일본제철 구(舊)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사무국장, 야노 히데키 ‘조선인 강제노동피해자 보상 입법을 목표로 하는 일한 공동행동’ 사무국장 등이 나섰다. 이들은 준비한 유인물을 행인들에게 나눠주거나 “일본제철은 한국 대법원판결을 조속히 받아들여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