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밀어낸 도시재생…아파트 대신 복고풍 관광지 들어섰다

입력 2019-10-30 17:00
30일 서울 종로구 창신숭인 가장 높은 곳인 '채석장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 일제강점기 때 석조건물에 쓸 돌을 캐고 남은 산 절벽인 채석장 터가 가운데 보인다. 오주환 기자

30일 최근 복고풍 관광지로 유명해진 서울 종로구 창신숭인 지역. 버스로 언덕을 한참 오르자 벽돌 두 개가 맞물린 듯한 콘크리트 조형물이 나왔다. 고도 121.5m의 이 ‘채석장 전망대’ 꼭대기에 서자 햇살이 내리쬔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동쪽 빽빽한 아파트·주택 숲 사이로는 전망대의 주인공인 채석장이 섬처럼 떠 있었다. 채석장은 일제강점기 석조건물 건축에 쓸 돌을 채집하기 위해 깎아내린 산 절벽 터를 말한다. 이를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창신숭인이 자랑하는 새 명소다.

서울시는 전국 1호 도시재생선도지역 창신숭인의 변화상을 이날 공개했다. 창신숭인은 채석장과 피난민 밀집지역, 80년대 봉제산업지를 거쳐 지금은 낙후된 도심이 된 곳이다. 2007년 ‘뉴타운 열풍’ 당시 이곳은 아파트 숲이 들어설 계획이었다. 하지만 주거 수요가 많지 않은 데다 부동산 불경기가 겹치자 주민들은 2013년 ‘뉴타운’ 대신 ‘도시재생’으로 마음을 돌렸다. 뉴타운 재개발을 추진하면 기존 산업·문화시설이 없어지고 대다수의 기존 거주자가 다른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한다.
고도 121.5m의 채석장 전망대. 오주환 기자

창신숭인은 ‘과거’가 깃든 곳에 집중했다. 이 지역 가장 높은 곳에 세운 채석장 전망대가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인 채석장과 서울 시내를 두루 조망할 수 있게 했다. 창신숭인은 이곳이 남산과 더불어 서울의 대표 전망장소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전망대뿐만 아니라 채석장 터 자체도 정부의 허가를 거쳐 개발할 방침이다.

땅으로 내려오면 만나는 봉제거리는 이미 시크릿가든·미생 등 유명 드라마의 배경으로 나와 유명해진 복고풍 거리다. 동대문 패션상권의 배후지역인 이곳은 80~90년대 원단·재봉틀 등을 파는 상권이 형성됐다. 난개발된 당시 낡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거리 좌우로는 빛바랜 상가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위로는 전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거리는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는 오토바이들로 붐볐다. 동대문으로 배달할 소량의 섬유 자재를 나르는 이들이다. 봉제업체 사이사이로는 오래된 슈퍼마켓과 가전 매장, 세탁소, 정육점이 끼어들었다.
관람객들과 주민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창신숭인 봉제거리를 다니고 있다. 가까운 동대문 패션밀집지로 자재를 공급하는 오토바이들이 많이 보인다. 오주환 기자

지난해 문을 연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이곳 봉제산업의 역사를 담고 있다. 과거 세탁소와 봉제거리를 담은 옛 사진과 유명 디자이너들의 최신 사진이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관람객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이음피움 봉제역사관를 둘러보고 있다. 벽면에는 한국 봉제산업의 역사를 담은 글과 사진이 걸려 있다. 오주환 기자

80년대 이전의 역사도 있다. 3000평이 넘어 ‘동대문 밖 큰대문집’으로 불린 백남준 옛 집터 한쪽에 ‘백남준기념관’이 자리 잡았다. 백남준의 실제 작품은 없지만 그를 기린 비디오 예술 작품들이 들어섰다.

서울시는 창신숭인같은 도시재생 사업 27개를 추진하고 있다. 과거 산업화의 상징인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를 4차 산업혁명 요충지로 재정비하는 ‘다시·세운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서울시와 주민들의 제 1목표는 ‘원래 주민들을 계속 살게 하는 도시재생’이다. 창신숭인 봉제산업같은 산업지역과 채석장·백남준기념관 같은 문화적 장소를 보존하는 게 다음 목표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오주환 기자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내부 카페의 전망. 오주환 기자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