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평양전’ 이어 ‘부산전 패싱’ 5개월 전 포착된 북한발 시그널

입력 2019-10-30 12:58 수정 2019-10-30 14:07
파울루 벤투(오른쪽 두 번째)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3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기자회견에서 출전의 각오를 밝히고 있다. 콜린 벨(오른쪽)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 감독과 박용수(왼쪽) EAFF 사무총장, 홍명보(왼쪽 두 번째)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가 동석했다. 김지훈 기자

‘깜깜이 평양전’에 이어 ‘부산전 보이콧’으로 이어진 남북 축구의 연이은 파행은 이미 5개월 전부터 전조가 나타났다.

북한 여자 축구대표팀은 오는 12월 부산에서 개막하는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로 상위 2개국에 주어지는 출전권을 확보했지만, 지난 5월부터 회장국인 한국의 출전 종용을 4개월이나 외면했고 지난달에야 공문을 통해 불참을 통보했다. 북한의 비협조로 무관중·무중계 속에서 치러진 지난 15일 남북 남자 축구대표팀의 ‘깜깜이 평양전’은 단발성 사건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용수 EAFF 사무총장은 3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E-1 챔피언십 기자회견을 열고 대회를 소개한 뒤 북한의 여자부 불참을 별도로 언급했다. 박 사무총장은 “북한을 대신해 대만이 참가한다. EAFF 사무국은 지난 5월 20일 회원국에 참가 의향서 제출을 요청했다. 북한은 응하지 않았다”며 “이메일 등 여러 채널로 북한과 접촉해 출전 의사를 타진했지만, 9월 중순에 북한축구협회로부터 불참 의사를 통보하는 공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은 북한·중국·일본·대만 등 동아시아 10개 회원국을 둔 EAFF의 올해 회장국이자 오는 12월 10~18일 부산에서 열리는 2019 E-1 챔피언십의 개최국이다. 북한은 지난 대회 여자부 우승국이다. FIFA 랭킹에서 EAFF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순위에 있어 올해 대회에서도 출전권을 얻었다.

EAFF는 남북 남자 축구대표팀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3차전이 열린 지난 15일 평양에서 북한축구협회와 접촉해 E-1 챔피언십 여자부 출전을 종용했지만 수락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 경기 역시 북한의 비상식적인 진행으로 남측 관중·취재·중계진이 파견되지 못했다. 북한축구협회는 지난달 2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 관계자를 만나 경기 개최 입장만 확인했을 뿐 대한축구협회와 실무를 원활하게 진행하지 않았다. 경기 당일 평양 김일성경기장 5만여석은 모두 비워졌다.

박 사무총장은 “평양에서 ‘참가할 수 없다’는 답변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며 “불참 사유를 알 수 없다. 공문에는 ‘참가할 의향이 없다’고만 적혀 있었다. 그 사유가 궁금해 여러 차례 물었지만 북한은 밝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북한축구협회 징계 가능성에 대해서는 “EAFF 집행위원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다. 복합적인 이유로 불참한 것으로 생각돼 현재 제재할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은 E-1 챔피언십을 소개하고 남녀 축구대표팀 감독의 각오를 듣는 자리였지만 북한의 불참에 대한 질의응답이 적지 않았다. 한국 여자 대표팀의 신임 사령탑인 콜린 벨 감독은 “북한에 대해 정치적으로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가할 팀에 더 집중하겠다”면서도 내년 2월 도쿄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 A조에서 만날 북한에 대해 “문제없어요”라고 우리말로 재치 있게 답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