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각료들의 잇따른 실언으로 당혹해 하고 있다. 최근 경제산업상이 유권자에게 금품을 제공한 의혹으로 사퇴한 후 아베 총리가 부랴부랴 사죄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문부과학상과 방위상이 사려깊지 못한 발언으로 또다시 비판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상은 지난 24일 위성방송 ‘BS후지’에 출연해 대학 입시 민간 영어시험 도입 정책과 관련해 경제적, 지리적 조건이 불공평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자신의 분수에 맞춰 승부하면 된다”고 말했다. 내년도부터 일본 대입에 도입되는 영어시험을 둘러싸고 일본의 교육정책 수장인 문부상이 학생들의 빈부격차가 입시에 반영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하기우다 문부상의 발언이 알려지자 일본 네티즌들은 “지방의 가난뱅이는 분수를 알라는 말이냐”는 취지의 비판이 잇따랐다.
일본은 내년도 대입부터 영어 과목의 경우 토플(TOEFL) 등 영어 민간시험 점수로 대체한다. 고3 재학 시기 중 4~12월 사이에 응시한 2회의 시험 성적표를 지원대학에 제출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1~2학년 때 연습 삼아 보는 시험 횟수는 제한이 없는데다 수험료도 고액이라 학생들의 경제적 격차가 입시에 반영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방 학생들의 경우에는 시험을 보려 도시로 나와야 한다는 것도 부담된다.
하기우다 문부상은 방송에서 사회자가 ‘경제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혜택 받은 학생이 유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그렇게 말한다면 ‘입시학원에 다니고 있는 사람은 다 교활하다’는 말과 다름없다”면서 “부잣집 자녀가 여러 번 시험을 치러 워밍업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키(분수)에 맞춰 2번을 선택해 승부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인생에서 자신의 의지로 한 두 번 고향에서 나와 시험을 보는 긴장감도 소중하다”고 덧붙였다.
하기우다의 발언에 대해 일본 각계의 비판이 이어졌다. 교육계에서는 “교육의 기회 균등을 규정한 교육기본법에도 어긋나는 문제의 발언”이라는 비판이 많다. 일본의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지난 26일 하기우다의 발언에 대해 “문부과학상으로서 있을 수 없는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비판이 점점 확산되자 하기우다 문부상은 28일 기자들 앞에서 “수험생에게 불쾌한 생각을 줄 수 있는 설명이 부족한 발언이었다”며 사과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여론이 계속 악화되자 29일에는 “방송에서는 ‘분수’ 발언을 철회한다. 사죄드린다”며 바짝 엎드렸다.
고노 다로 방위상은 28일 도쿄에서 열린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나는 지역에서 ‘비의 남자’라고 자주 불린다. 내가 방위상이 되고 나서 벌써 태풍이 3개”라고 말했다가 비난에 직면했다. 비 피해 지역에 파견된 자위대원의 노고를 위로하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농담한 것이지만 최근 연이은 태풍으로 다수의 인명이 희생된 상황에서 경솔했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은 올가을 19호 태풍 하기비스와, 20호 태풍 너구리, 21호 부알로이의 영향으로 1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재산 피해는 아직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 고노 방위상의 발언에 대해 입헌민주당의 아즈미 준 국회대책위원장은 “(태풍을) 농담 소재로 이용하는 감각을 믿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집권 자민당 내에서도 “피해 지역 주민이 상처를 받는 발언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고노 방위상은 29일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 출석해 해당 발언에 대해 “재해 현장에 파견된 자위대원들의 처우를 개선해 나가야만 한다는 뜻에서 한 말”이라고 해명하며 “불쾌하게 느낀 분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고노 방위상은 앞서 아베 총리에게도 해당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것에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는 하기우다 문부상처럼 발언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각료들이 잇따라 문제를 일으키자 아베 총리는 이날 연립여당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각료의 발언으로 여러모로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 지금부터는 긴장하고 진지하게 대처해가겠다”며 사과하는 것으로 파문 진화에 나섰다. 각료들의 실언이 아베 정권의 지지율에도 얼마나 영향을 줄지도 관심사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