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유신헌법 통과 직후 첫 대학 관련 공안사건인 ‘고려대 NH회’ 사건으로 누명을 쓴 피해자가 45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됐던 노동운동가 출신 김영곤(68)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김씨는 1974년 11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고 그해 12월 형이 확정됐다. 같은 사건에 연루돼 내란음모 등 혐의로 기소됐던 함상근(69), 최기영(66)씨 등 6명은 2013년 재심을 청구해 2017년 항소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검찰은 1974년 7월 고려대학교 학생이었던 김씨를 지하조직 ‘NH회’에 가입해 회원들과 회합하는 등 반국가단체 활동을 펼친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이 조직이 민중봉기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시키고 노동자·농민과 함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김씨는 지난 3월 재심을 청구하면서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영장이 없는 상태에서 경찰에 연행돼 11일간 불법 구금됐고, 잠을 재우지 않고 구타하는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말했다. 재심 과정에서는 “당시 고려대 서클 ‘한맥회’ 회원이었을 뿐 반국가단체에 가입하고 회합한 사실이 없다”며 “NH회라는 단체는 존재하지 않고 경찰·중앙정보부가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한맥회 회원들은 NH회 사건은 한맥회가 추구하던 민족주의(Nationalism)와 인도주의(Humanism)의 영어 첫 글자를 따 조작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씨는 재심 첫 공판에서 “당시 검사에게 정부에 반대한 적은 있어도 반국가적인 행동을 한 적은 없다고 했다가 다시 중앙정보부에 가서 혼이 나고 왔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검찰 조사에서 고문을 받지 않았는데도 허위로 자백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재판부는 김씨에 대한 수사는 불법이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경찰에 연행된 후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11일간 불법 구금돼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상태에서 조사받았고, 검찰 송치 전까지 서울시경과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와 진술서는 불법 구금되거나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작성된 것이라 증거능력이 없다”며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