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불리한 증언 쏟아지는데, 백악관은 정보 안 주고
‘반(反) 트럼프’ 바람에 내년 상원의원 선거 패배 위기감
트럼프의 공화당 장악력 확고…“결정적인 증언 없었다” 반론도
여당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와 관련해 ‘양심’과 ‘정치적 계산’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들은 어느 수준까지는 양심과 반대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더욱 확산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유·무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흔들리는 것은 탄핵 정국의 엄청난 변수다. 양원제를 채택하는 미국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려면 하원 전체 의석의 과반 찬성과 상원 전체 의석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고 있어 하원 통과는 쉽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상원 전체 의석은 100석인데, 공화당이 53석으로 다수당이다. 민주당은 47석이다.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최소 상원의원 67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루가 상원이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그런데 탄핵 조사가 두달 째를 접어들면서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고 WP가 보도한 것이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지쳐가는 가장 큰 이유는 탄핵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리한 증언들은 쏟아지는데 이를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벼랑으로 모는 발언들을 하는 증인들도 믿을만한 전·현직 국가안보 고위 관료들이라 반박이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목줄을 죄어오는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공화당에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충동적 광분’과 ‘분노의 발작’을 일으키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도 부담이다. 한 공화당 상원의원은 익명으로 WP에 “(현 상황은) 공포영화 같다”고 말했다.
더 본질적인 고민도 있다. 내년 11월 3일 대선과 같은 날 실시되는 상원의원 선거다. 미국 상원의원의 임기는 6년인데, 2년 마다 전체 의석 3분의 1씩을 새로 뽑는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더라도 ‘반(反) 트럼프’ 바람이 확산돼 내년 선거에서 패배하지 않을까 하는 근심에 쌓여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원 의석 수 차이는 3석에 불과한데, 현재까지 여론조사 결과 공화당이 불리한 곳은 최소 5개로 파악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트럼프 방어’에만 몰두하다가 상원을 민주당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져 있는 것이다. ‘반 트럼프’ 바람으로 상원의원 자리를 잃을 수 있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반란 여부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경우 양심에 따라 탄핵 찬성표를 던질 공화당 상원의원이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키를 잡고 있는 인물은 상원 공화당 사령탑인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다. 그는 대표적 ‘친(親) 트럼프’ 인사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과 하원의 탄핵 조사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공동 발의했다. 하지만 WP는 “매코널의 최우선 관심사는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상황이 악화되면 그가 모종의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상원에서 반발 움직임은 가시화되고 있다. 매코널 원내대표가 공동 발의한 하원 규탄 결의안에 트럼프와 앙숙인 미트 롬니를 포함해 3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서명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침묵하고 있다. 로이 블런트 상원의원은 “하원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 장악력이 아직 단단하고,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 같은 증언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실책을 거듭할 경우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등을 돌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