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을 둘러싼 양국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 경제협력 명목의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일 교도통신은 28일 한·일 관계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양국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의안 검토에 착수했다”며 “지금까지의 협의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이 경제협력 명목의 기금을 창설하되 일본 기업이 여기에 참여하는 방안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일본 측 관계자가 제시한 초안으로 알려진 이 안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공동 기금에 자금을 내지 않는다.
이 안의 핵심은 한·일 양국이 ‘상호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자금을 준비한다는 데 있다. 통신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1965년 한일기본관계조약과 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기업이 ‘징용 문제 해결은 끝났다’는 일본 정부 입장과 모순되지 않는 방식으로 공동 기금에 자금을 댈 수 있도록 마련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지난 6월 제시했다가 거절당한 ‘1+1’안과는 명백히 다른 내용이다. 당시 안에는 한·일 양국의 출자의 목적으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액 지급이 명시됐다.
통신은 이 같은 방안이 마련된 배경으로 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의 발언을 소개했다. 지난 22일부터 2박 3일간 일본을 방문한 이낙연 국무총리와 회담한 가와무라 간사장은 24일 TV도쿄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총리는 ‘지혜를 내자’고 했다. 배상금이 아니라 미래의 한·일 관계를 만드는 자금을 내는 쪽으로 협의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이 안을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일본 기업들이 일제의 공범으로서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에게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대법원의 입장과 배상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일본 정부의 입장 사이 간극이 커 양국 협의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 기업이 단순히 ‘양국 경제발전’을 위해 기금 마련에 참여한다면 한국 대법원 판결의 핵심에서 어긋나는 일이 될 수 있다.
다만 그동안 한국 정부가 먼저 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던 일본 정부가 사태 수습에 적극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긍정적 변화가 감지된다는 해석도 나온다. 일본 정부 고위 관료는 통신에 “문제 해결의 책임은 여전히 한국에 있지만 일본도 지혜를 짜내고 있다. 한일 양측이 출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보도와 관련, 우리 외교부는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외교부는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가운데 징용 피해자와 양국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겠다는 입장”이라며 “이 같은 기조 하에 일본 외교당국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형민 이상헌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