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심판·관중까지 폭언하고 성희롱… 얼룩진 전국체전

입력 2019-10-28 19:07

“XXX가 이기려는 의지가 없어“ “집중 안 해 XX야, 너 나올래 XX야?”

지난 3~10일 열린 제100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에서 고등학생 운동선수들이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었다는 조사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트인권 특별조사단은 28일 전국체전 14개 주요 종목에서 고등학생 운동선수를 중심으로 언어·신체·성폭력 등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한 결과 과열 경쟁과 권위주의적 문화로 인한 인권침해 상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한 종목 남자 감독은 여자 선수들에게 “야 이 XX야, 죽을래, 미쳤어” 등의 폭언을 하고, 선수를 툭툭 밀치기도 했다. 폭언을 들은 관중 일부는 감독에게 “저게 감독이냐, 욕하지 마라, 도대체 뭘 배우겠냐”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성희롱 및 성추행으로 의심되는 행동도 목격됐다.

인권위에 따르면 한 종목 심판이 경기장 안내 여성 직원에게 “딱 내가 좋아하는 몸매야, 저런 스타일은 내가 들고 업을 수 있지”라고 말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일부 종목에서는 작전 타임 도중 남자 코치가 여자 선수의 목덜미를 주무르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 밖에도 선수들은 경기를 마친 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도 못한 채 종목 단체 임원의 훈화를 들었다. 특히 일부 여성 선수나 자원봉사자들은 종목단체 임원들의 다과 수발을 들어야 했다.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미흡했다. 대부분 경기장에서 탈의실·대기실·훈련실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관중석이나 복도 등에서 자신들이 가져온 매트를 펴고 관중들과 섞인 채 휴식을 취해야 했다.

흡연 장소가 학생 선수 출전 대기실 바로 옆에 있어 담배 연기가 고스란히 학생 선수들에게 전해진 곳도 있었다.

관중들의 비매너도 포착됐다. 일부 관중은 선수들을 향해 “시골 애들이 거세”라며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조롱을 일삼았다. 여성 선수들에게는 “나한테 시집와라.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네, 좀 더 벗으면 좋으련만” 등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

인권위는 “높은 단상에 앉아 어린 여성들의 차 심부름을 당연한 듯이 받는 구시대적 단상 문화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면서 “스포츠 과정에서 신체 접촉이 많은 것을 빙자해 성폭력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앞으로 스포츠 경기에서 인권침해와 권위주의적 문화가 근절될 수 있도록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각 이해당사자에게 개선을 촉구하고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방침이다.

김영철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