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가 4년 만에 우파에서 좌파로 정권이 교체됐다. 중도좌파연합 ‘모두의 전선’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는 27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에서 48.1%의 득표(개표율 98%)를 기록하며 중도우파연합 ‘변화를 위해 함께’의 후보로 연임에 도전한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에 승리했다. 마크리 대통령은 40.4%에 그쳤다. 1차 투표에서 45% 이상을 득표한 후보는 결선 없이 당선이 확정되는 아르헨티나 대선 규정에 따라 페르난데스의 승리가 확정됐다고 CNN 등이 전했다.
페르난데스의 승리에 따라 ‘페론주의’도 아르헨티나에 돌아왔다. 페론주의는 1940년 후안 페론 전 대통령과 부인 에바 페론이 내세운 국가사회주의 정책으로 외국 자본 배제, 산업 국유화,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좌파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2000년대 들어 아르헨티나에서 다시 부활했다. 2003~2015년 집권했던 아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과 그의 아내인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이 페론주의 계승자였다.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은 이번에 페르난데스의 러닝메이트로서 부통령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외신은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이 페르난데스 정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부통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5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페르난데스 당선인은 부에노스아이레스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 겸 법학 교수였다. 키르치네르 부부 집권 당시인 2003~2008년 내각 책임자인 총리를 지냈다. 그는 이들 부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페론주의자지만 스펙트럼이 넓은 ‘온건 페론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후 지지자들과 승리를 자축하면서 “지금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는 아르헨티나인들의 고통을 멈추는 것”이라며 “우리는 돌아왔고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좌파 정권의 재등장에는 마크리 전 대통령의 친(親)시장 정책의 실패와 긴축정책에 대한 아르헨티나 국민의 불만이 깔려있다고 외신은 분석하고 있다. 마크리 대통령은 4년 전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의 실정으로 경제 위기에 몰린 아르헨티나 경제를 바로잡겠다고 공언했었다. 하지만 국민의 기대와 달리 마크리 정권 하에 경제는 더욱 악화됐다. 빈곤율과 실업률이 치솟았고, 페소화 가치는 급격히 하락하면서 국민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물가 상승의 고통에 시달렸다. 특히 아르헨티나 정부가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조건부 구제금융(약 560억 달러)을 받으면서 강력한 긴축정책을 펴자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아르헨티나 통계청(INDEC)에 따르면 2018년 하반기 국민 빈곤율은 32%로 병원비와 전기료도 제대로 못 내는 국민이 전체의 3분의 1에 달한다. 먹고사는 것조차 힘든 절대 빈곤율도 6.7%나 된다. 올해 1~6월 실업률은 10.1%로 국민 10명 중 1명이 실업자 상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이번 정권 교체에 대해 시장은 반응은 좋지 않다. 페르난데스 정권이 통화 확대정책을 펼 경우 국가 재정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페르난데스 당선자는 IMF에 구제금융 부채 상환 연기를 요청하는 한편 추가 금융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총외채는 2800억 달러(약 328조원)를 웃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 가운데 1010억 달러의 상환을 미루겠다고 지난 8월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문제는 IMF가 아르헨티나 정부의 강력한 긴축정책 없이는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 등은 “아르헨티나가 자칫 국가 부도 상태에 빠질 수 위험이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다른 신흥시장에서도 자금 이탈 속도가 빨라지는 등 악영향을 끼쳐 전세계가 금융위기 같은 복잡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