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학생들이 박사 학위 수여식에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다. 총장은 이들의 악수를 거부했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중국보(中國報)는 지난 27일(현지시간) 열린 홍콩폴리텍대학교(香港理工大学·홍콩이공대학) 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두 명의 여학생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두 학생과의 악수를 거부한 총장은 정치적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홍콩폴리텍대학교는 홍콩의 공립 대학으로 홍콩 내 5위권에 속하는 대학으로 평가받는다. 등금광(滕锦光·Teng Jin-Guang) 교수가 지난 7월부터 총장직을 맡고 있다.
박사 학위 수여식 전부터 재학생들은 이날 참석하는 졸업생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해달라고 부탁했다. 시위 때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이 지난 5일부터 시행되면서 홍콩시위대는 이에 저항하며 복면과 마스크를 벗지 않고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등 총장은 이날 박사 학위 수여식 직전 연설에서 “지속되는 사회적 불안은 홍콩 사람들에게 많은 걱정을 안겼다. 대학은 다양성을 포용하도록 권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이 졸업하는 학생들을 향해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폭력을 끝내자”고 했다. “대학 교육은 사람들이 의견을 공손하고도 합리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우리와 배경이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포용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의 권리와 우리의 책임을 관찰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사 학위 수여식에는 총 326명의 학생들이 졸업자로 참석했다. 이들 중 한 명은 검은색 마스크를, 다른 한 명은 파란색 의료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학위를 받으러 무대에 오른 두 사람은 대학평의회 의장을 향해 인사하면서는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하지만 총장에게 향하면서는 다시 마스크를 썼다.
검은색 마스크를 쓴 한 여학생이 먼저 등장해 총장을 향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요구했다. 하지만 총장은 악수를 거부하고는 학생에게 손짓으로 무대 밑으로 내려가달라고 요구했다. 의료용 마스크를 착용한 또 다른 여학생이 다가오자 총장은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손으로 무대 밑을 가리켰다.
이날 총장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나머지 학생들과는 악수를 나눴다. 박사 학위 수여식은 1시간30분 정도 진행됐다. 등 총장은 수여식 직후 쏟아지는 언론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등장했던 여학생 중 한 명은 학위 수여식 직후 취재진에게 “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했다”며 “총장은 지난 몇 달간 학생들의 여러 요구에도 답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어떤 요구를 해왔는지는 부연하지 않았다. 마스크 착용 이유에 대해서는 “몸이 좋지 않아 마스크를 착용했다”고 답했다.
홍콩폴리텍대학교 학생조합 회장은 “총장의 행동은 무례했다”며 “연설에서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대학 총장으로서 졸업생들의 다양한 견해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콩폴리텍대학교의 한 관계자는 SCMP에 “이날 아침 진행된 리허설에서 스태프들은 졸업생들에게 행사에 대한 존중을 보여달라며 무대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고 밝혔다.
홍콩폴리텍대학교 대변인은 “졸업생들에게 무대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말라고 요구한 건 사실”이라며 “학위수여식은 엄숙하고 웅장한 행사이며 학교에서는 예비 졸업생들이 행사를 존중해 요구 사항을 준수하기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이어 “홍콩폴리텍대학교는 개인이 의견을 드러낼 권리를 존중하지만 학생들도 행사의 규칙을 존중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6월9일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위는 4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5가지를 모두 수용할 것을 홍콩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