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親) 미국 성향의 지도자로 알려진 바르함 살리흐 이라크 대통령이 “동맹국으로서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더이상 확신이 들지 않는다”며 “이란과 러시아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과 이라크의 관계를 재조정할 준비를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군의 시리아 북부 철수 결정으로 중동 지역 세력 구도가 재편되면서 미국의 적으로 간주되는 세력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 것이다.
살리흐 대통령은 미국 HBO채널을 통해 27일(현지시간) 공개된 악시오스(Axios on HBO)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16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중시하고 이를 유지하길 원한다”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정책들이 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인터뷰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슬람국가’(IS)의 수괴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 성공을 선언하기 6일전에 이뤄졌다.
살리흐 대통령은 “(시리아에 남은) 미국의 군사적 억제력에 대해 매우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며 “이 지역의 미국 동맹 세력들은 미국의 신뢰성 자체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악시오스는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의 성공은 미 군·정보당국의 전략 자산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며 “그의 죽음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대로 미군을 중동 지역에서 모두 빼낼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전략 공백에 대한 우려를 강화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살리흐 대통령은 “우리는 상호연결된 세상을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정책들이 중동 지역에 영향을 미치듯 이라크에서 발생하는 일도 역으로 당신들의 안보에 영향을 미친다”며 “미군의 시리아 철수의 가장 큰 결과는 IS의 재출현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극단주의 세력의 부활은 이 전쟁을 또 다른 국면으로 부추길 것”이라며 “IS를 완전히 굴복시켰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생각은 무모하고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시리아 북부 지역에서는 미군의 철수로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이 시작되자 역내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혼란을 틈탄 IS 수감자들의 대량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쿠르드족 출신 중견 정치인이자 이라크령 쿠르드 자치구를 이끌었던 살리흐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에서 쿠르드족을 겨냥한 인종 청소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인종 청소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며 “그것은 쿠르드족의 비극적 역사였다. (미군 철수로 인한) 인도주의적 비용은 끔찍하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