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IS 수괴’ 공습작전 재구성…은신처 파악부터 사망 확인까지

입력 2019-10-28 11:21 수정 2019-10-28 16:49
美, 러시아 공동 관리 영공 넘어가면서 이유 지어내
美 특수부대, 폭탄 설치 우려해 은신처 벽 폭파하고 진입
美 군견, 알바그다디 막다른 곳까지 몰아
트럼프에 배신당한 쿠르드족, 은신처에 결정적 정보 제공


미국의 공습 작전으로 미국의 ‘공개수배 1호’ 테러리스트가 숨졌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수괴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으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자 폭탄이 든 조끼를 터뜨려 자폭했다.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 지역의 바리샤에 있는 건물들이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돼 있다. 미군 특수부대는 27일(현지시간) ‘이슬람국가’(IS)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은신처를 급습했다. 알바그다디는 자폭해 숨졌다. AP뉴시스

작전명 ‘케일라 뮬러’, 심판의 의미

‘골프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토요일이었던 26일(현지시간)에도 라운딩을 즐겼다. 그가 백악관에 돌아온 시간은 이날 오후 4시. 넥타이 차림의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5시 백악관 상황실로 갔다.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상황실엔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 스콧 호웰 합동특수작전부대장 등 6명이 지구 반대편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특수작전을 생생한 화면으로 지켜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작전에 대해 “위험하고 대담한 야간 공습”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작전명은 케일라 뮬러였다. 미국인이었던 뮬러는 IS의 희생자다. 국제구호기관에 소속돼 시리아 난민 구호 활동을 펼쳤던 뮬러는 IS에 납치돼 18개월 동안 붙잡혀 있었다. 뮬러는 알바그다디에게 반복적으로 강간을 당한 뒤 피살된 인물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전했다.

작전명은 밀리 합참의장이 지었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우리는 마침내 3명의 미국인을 참수한 사람을 심판했다”고 말했다. 이번 작전명에 심판의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정문의 부비트랩 우려해 벽면 폭파해 진입

트럼프 대통령이 상황실에 있던 시각, 이라크는 27일로 넘어가는 자정 직전이었다. 이라크 북부에서 수송헬기 CH-47 치누크 등 8대의 헬기가 어둠을 뚫고 출격했다. 목적지는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 지역의 바리샤. IS 수괴인 알바그다디의 은신처가 있다고 미국이 파악된 지역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이라크 북부에서 시리아의 바리샤까지 가려면 이라크·러시아·터키가 통제하는 영공을 거쳐야 했다. 미군은 이들 국가에 구체적인 내용은 설명하지 않고 작전을 펼친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 국방부는 시리아에 주둔한 러시아에겐 적군에 의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충돌방지’ 차원이라고 둘러댔다. 8대의 헬기는 1시간 10분 정도 낮고 빠른 속도로 비행했다.

미군 헬기들은 알바그다디의 은신처에 접근했을 때 총격을 받았다. 미군도 반격을 가했다. 미 특수부대원들은 지상에 투입했다. 그들은 은신처 정문에 부비트랩 등 폭탄장치가 설치돼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은신처 벽면을 폭파하고 진입했다.

WP는 미군이 총격전 과정에서 5명의 적을 은신처 내부에서 사살했다고 전했다. 은신처 외부에서 숨진 IS 요원들의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현장 지휘관 “100% 확신. 잭팟”

미군 특수부대의 타깃이었던 알바그다디는 은신처 터널로 도망쳤다. 미 군견이 그를 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군견을 “아름답고, 재능있는 군견”이라고 표현했다.

막다른 곳에 몰리자 알바그다디는 폭탄이 있는 조끼를 터뜨렸다. 9·11 테러를 주도했던 오사마 빈라덴과 같은 현상금(2500만 달러·약 290억원)을 걸렸던 알바그다디가 숨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자녀 3명도 함께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바그다디가 영웅처럼 죽지 않았다”며 “그는 겁쟁이처럼 죽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울고, 징징대고, 비명 지르고, 아이들과 함께 죽었다”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26일 오후 7시 15분 알바그다디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작전 시작 2시 15분 이후였다.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은 27일 NBC방송에 출연해 “현장 지휘관이 전화통화에서 ‘100% 확신. 잭팟(대성공). 그를 잡았다. 오버’라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은 ABC방송에 출연해 “미군은 알바그다디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거부했다”고 말했다. 생포가 목표였으나 알바그다디가 폭사를 택했다는 것이다.

미군 특수부대는 미리 가져갔던 알바그다디의 DNA 샘플과 그의 훼손된 신체에서 얻어낸 DNA를 비교한 뒤 숨진 인물이 알바그다디라고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장에서 이뤄진 DNA 검사로 15분 만에 알바그다디의 신원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특수부대원들이 돌무더기 밑에 깔려있던 알바그다디의 신체 일부를 회수해 DNA 검사를 했다고 전했다. 15년 전 입수된 DNA 정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알바그다디가 2004년 2월 이라크와 쿠웨이트 국경 부근에 있는 부카 캠프에 구금돼 있던 시절 DNA 정보가 확보됐다는 것이다.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검사에는 가까운 친척의 DNA와 비교하는 방법도 있다. WP는 알바그다디의 딸이 자발적으로 DNA 정보를 제공했다고 미국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미군은 알바그다디가 숨진 이후 의도적으로 은신처를 폭파했다.

미 헬기 이동 장면, 지역 SNS로 퍼지기도

에스퍼 장관은 “지원 인력을 제외하면 이번 작전에 100명 미만의 특수부대원이 투입됐다”고 말했다. 지원 인력까지 포함되면 100명이 넘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미군의 어떤 부대가 이번 작전에 투입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미군 당국자는 “(미 육군 대테러 특수부대인) 델타포스의 일부 멤버가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미군 헬기가 어둠을 틈타 낮은 고도로 이동하는 장면이 알바그다디의 은신처가 있던 바리샤 지역의 소셜미디어로 퍼지기도 했다. 총격 장면과 폭발하는 장면도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부상자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스퍼 장관은 “2명의 미군이 경미한 부상을 당했지만 이미 복귀한 상태”라고 전했다.

트럼프에 배신당한 쿠르드족, 결정적 정보 제공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당국자들은 미국을 도와 시리아에서 IS 격퇴에 나섰던 쿠르드족이 알바그다디 은신처 파악에 유용한 정보를 전달했다고 인정했다.

쿠르드족이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의 마즐룸 압디 사령관은 트위터에 “5개월 동안 알그바다디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으로 ‘토사구팽’ 처지가 된 쿠르드족이 미국에게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작전이 구체화된 것은 최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작전은 알바그다디를 발견한 직후인 2주 전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어떤 지역에 알바그다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거기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펜스 부통령은 CBS방송에 출연해 “알바그다디 은신처에 대한 최신 정보를 받은 것은 지난주 초”라고 말했다. “첩보와 감시, 정찰로 우리는 알바그다디가 있을 곳으로 보이는 지역을 알아냈다”면서 “지난주 목요일(24일) 우리는 그의 은신처가 이들립 지역에 있을 것이라는 높은 개연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펜스 부통령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작전 마련을 지시했고, 군 당국은 25일에 작전을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작전 실행이 가능하다는 정보가 26일 입수됐고, 공습이 이날 시작됐다”고 말했다.

두 명의 미국 관리는 “알바그다디의 은신처에 관한 놀라운 정보는 지난여름 알바그다디의 부인 중 한 명과 연락책을 체포해 심문한 뒤 나왔다”고 말했다고 NYT가 보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