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돼지열병은 발병 초기부터 멧돼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돼지열병이 발견된 지 40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감염 경로를 밝혀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중앙사고수습본부는 멧돼지의 남하·동진을 차단하기 위해 경기도 파주와 강원도 고성을 잇는 광역 울타리를 구축한다고 27일 밝혔다. 수습본부는 또 그간 멧돼지 총기 포획이 금지됐던 완충지역 5개 시·군(경기도 포천·양주·동두천·고양, 강원도 화천)에서 28일부터 이를 허용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최근 바이러스가 사육돼지가 아닌 멧돼지에서 주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사육돼지 감염은 이달 9일 14번째 확진 이후 현재까지 추가 발생이 없는 상황이다. 반면 전날 강원도 철원 민통선 내 멧돼지에서 15번째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멧돼지가 사육돼지 농장 발생 건수를 추월했다.
멧돼지를 중심으로 돼지열병이 확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초동 대처 미흡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16일 경기도 파주시 연다산동에 있는 돼지농장에서 국내 첫 확진 사례가 나왔지만 당국은 당시 멧돼지에 의한 전파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에 초기에 멧돼지 총기 포획을 금지하기도 했다. 결국 당국은 첫 돼지열병 발병 후 계속 멧돼지 감염이 잇따르자 무려 4주가 지난 이달 15일 총기 포획을 허용했다.
돼지열병이 멧돼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당국은 여전히 감염 경로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가축 전염병이 40일이 넘도록 감염 경로조차 불투명한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2016년 11월 20일 전북 고창에서 발병해 전국으로 퍼진 H5N6형 조류인플루엔자(AI)의 경우 당국은 불과 1주일 만에 겨울철새를 통해 국내에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해외 전문가들과 더불어민주당은 돼지열병이 북한에서 내려온 멧돼지 때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5월 30일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첫 돼지열병 발생 통보를 했다. 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지난달 17일 인천 강화군 교동면 해안가 모래톱에서 멧돼지 3마리가 철책선 안쪽에 14시간 이상 머물다 북한으로 다시 넘어갔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1996년 북한 멧돼지가 바다를 건너 연평도에 나타난 적이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멧돼지는 15㎞는 거뜬히 수영할 수 있는 동물이다.
이에 따라 당국이 이미 북한에서 넘어온 멧돼지 전파 사실을 확인하고도 감염 경로를 아직도 발표하지 않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돼지열병이 북한에서 온 게 확실한데 (당국은) 북한에서 멧돼지가 못 넘어온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며 “북한 돼지까지 우리가 눈치를 봐야 하느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정부는 초기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북한 전파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