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화물 트럭 냉동컨테이너에서 발견된 시신 39구 중 다수가 베트남인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국 경찰은 당초 희생자를 모두 중국인으로 추정했지만, 베트남 시민단체들은 희생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메시지를 공개하고 베트남인 20여명의 실종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영국 수사당국은 트럭운전사를 기소하고 인신매매·밀입국을 알선 범죄조직이 연루됐는지 수사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 미국 CNN방송 등은 26일(현지시간) ‘에식스 냉동컨테이너 집단 사망 사건’의 희생자 대부분이 베트남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BBC는 영국 내 대표적인 베트남 커뮤티니 ‘비엣홈’(VietHome)에 베트남인 약 20명의 실종신고가 접수됐다고 전했다. 실종자의 나이는 15~45세로 다양하고, 이중 20세 남성 응우옌 디 르엉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응우옌 디 르엉의 아버지는 지난주 아들이 영국으로 가기 전 프랑스 파리에서 다른 그룹과 합류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 아들과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가끔 집에 전화를 했는데 지난주 마지막 통화 이후로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다.
앞서 베트남 시민네트워크 ‘휴먼 라이츠 스페이스’도 26세 여성 팜 티 짜 미가 어머니에게 ‘숨을 쉴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은 25일 보도했다. 짜 미는 트럭이 벨기에에서 영국으로 가던 때에 “엄마 아빠 미안해. 외국으로 가는 것은 성공하지 못할 것 같아. 둘 다 사랑해. 숨을 쉴 수가 없어 죽을 것 같아. 미안해 엄마”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짜 미는 베트남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뒤 이후 프랑스를 통해 영국으로 들어가려는 계획을 갖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짜 미의 가족은 이를 위해 밀입국 알선 조직에 3만 파운드(약 4500만원)를 지불했다고 말했다. 이들 가족은 한 달에 약 400달러(약 47만원)밖에 벌지 못했지만 딸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돈을 모아 영국행을 지원했다고 CNN은 전했다. 짜 미의 아버지는 “밀입국 알선업자들은 (밀입국을) 비행기나 자동차로 안전하게 갈 것이라 말했다”며 “만약 (딸이) 그렇게 갈 거라는 걸 알았다면 절대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CNN에 말했다.
응에안성 옌타인현에서 활동하는 가톨릭 신부인 앤서니 당 흐우 남은 로이터 통신에 “영국 냉동 컨테이너에서 숨진 채 발견된 39명 가운데 대다수가 베트남 출신일 개연성이 있다”며 “희생자들의 가족과 연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영국 에식스 경찰은 지난 23일 잉글랜드 남동부 에식스주에 있는 한 산업단지의 화물트럭 냉동 컨테이너에서 39구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시신은 남녀 각각 31명, 8명으로 최저 영하 25도까지 내려가는 냉동 컨테이너 안에서 동사나 질식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앞서 이들 모두를 중국인으로 추정했다. 2000년 6월에도 중국인 이민자 58명이 트럭 컨테이너에서 도버 해협을 건너다 숨진 채 발견된 적이 있었다. 이에 런던 주재 중국 대사관은 에식스 현장에 직원들을 파견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영국 경찰이 사망자들의 국적을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희생자들이 위조 신분증을 갖고 있어 신원 확인에 혼선을 빚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 경찰은 이번 사건 용의자 트럭 운전사를 살인, 인신매매, 이민·자금세탁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고 이날 밝혔다. 운전자는 신원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모리스 로빈슨(25)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건 관련자 3명을 전날 체포했다. 잉글랜드 서북부 체셔의 워링턴에서 조안나·토머스 마허(38) 부부를 밀입국 주선 및 살인 등의 혐의로 체포했고, 북아일랜드 출신의 48세 남성을 런던 스텐스테드 공항에서 체포했다. 별도로 아일랜드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20대 초반 남성을 더블린 항구에서 체포했다고 밝혔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