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음하는 여성들’ 왜 크게 늘었나…일·양육 부담 가중 탓?

입력 2019-10-27 17:02

성인여성 4명 중 1명이 월 1차례 이상 한 자리에서 술 5잔(맥주 3캔) 이상을 마시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당국이 ‘여성의 폭음’으로 규정한 음주 행태다. 여성 흡연율도 감소 추세를 보이는 남성과 달리 늘어나고 있다. 일과 양육에 대한 부담이 여성에게 가중되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폭음 및 흡연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건복지부가 27일 공개한 ‘201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 여성 월간폭음률은 2005년 17.2%에서 2018년 26.9%로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성인 남성의 월간폭음률은 55.3%에서 50.8%로 감소한 것과 다른 추세다.

보건 당국은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성은 7잔(맥주 5캔), 여성은 5잔(맥주 3캔)을 마신 걸 폭음으로 본다. 고위험음주율도 성인 남성은 2005년 19.9%에서 2018년 20.8%로 소폭 늘었는데 성인 여성은 3.4%에서 8.4%로 2배 넘게 증가했다. 1회 평균 7잔 이상(여성은 5잔)의 술을 주 2회 이상 마시는 걸 고위험음주로 분류한다.

김광기 인제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여성의 폭음 증가에 대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었지만 일과 양육을 지원해줄 사회보장이나 양육복지, 가정에서의 남녀 가사분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여성이 더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돼 음주로 이어진다”고 해석했다. 그는 또 여성은 결혼 이후 임신과 출산, 육아 등으로 음주가 줄어드는 게 일반적인데 우리나라는 직장 회식 등에서 음주가 많이 이뤄지는 상황적 요인이 임신, 출산, 육아라는 요인보다 상위에 있는 것도 한 몫 한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여성 흡연율 및 폭음 증가에 대해 내년 상반기 심층분석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성 지표는 음주뿐 아니라 흡연에서도 악화했다. 성인 여성 흡연율은 2015년 5.5%에서 2016년 6.4%, 2017년 6.0%, 2018년 7.5%로 매년 올랐다. 국민건강영양조사가 도입된 1998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같은 기간 성인 남성 흡연율은 39.4%에서 40.7%, 38.1%, 36.7%로 떨어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여성이 선호하는 가향담배 등과 같은 신제품이 출시되고 흡연한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높아진 게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여성 흡연 증가는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국립암센터는 ‘여성흡연의 특징’을 분석한 결과 “여성은 긴장과 스트레스, 감정적 어려움을 덜기 위해 주로 흡연하는데 이런 부정적 감정이 재흡연의 큰 요인이 된다”며 “회식이나 모임과 같은 사회적 상황에서 재흡연하는 경우가 많은 남성과 차이가 있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여성의 우울증이 남성의 두 배 정도 돼 흡연과 우울의 관련성은 특히 여성에서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번 조사에서 성인 여성의 스트레스인지율은 2018년 기준 32.0%로 성인 남성(26.2%)보다 5.8%포인트 높았고 우울감경험률도 성인 여성은 6.1%를 기록해 성인 남성(2.5%)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


여성 흡연은 생리주기와도 연관 있다. 암센터는 “여성은 금단증상 중 우울감과 무기력함, 긴장, 집중력 저하, 체중변화 등을 많이 호소하는데 이는 여성의 70%가 경험하는 월경 전 증후군의 증상과 비슷하다”며 “이 때문에 월경주기에 따라 금연성공률이 다르다는 보고도 있다”고 전했다.

체중조절을 목적으로 흡연을 시작하는 여성도 많다. 대한금연학회는 여성 흡연의 특성을 분석한 자료에서 “금연을 시도하는 여학생 중 20%와 남학생 중 7%는 체중증가를 이유로 금연시도를 중단했다는 보고가 있다”며 “흡연이 체중을 조절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여성 흡연을 야기하는 위험 요인 중 하나”라고 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