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렴구처럼 반복되는 불황 온다”… 실적 좋아도 ‘웃픈’ 은행들

입력 2019-10-28 04:01
저금리 장기화될수록 ‘이자장사’ 수익률 떨어져
내년 시행될 예대율 규제에 주가 부양 한계까지 ‘한숨’
“산업 간 경계 허무는 협업으로 사업 다각화 노려야”


독일 은행권 2위 코메르츠 방크(Commerz Bank)는 지난달 말에 올해 3분기 실적 발표 간담회를 열었다. 단상에 오른 마틴 지엘케 최고경영자(CEO)는 “오늘은 제 친구 생일입니다. 축하해주세요”라며 박수를 유도했다. 왜 갑자기 뜬금없는 행동을 했을까. 그는 저조한 3분기 실적, 은행 수익성을 위협하는 유로존의 초저금리를 언급하기에 앞서 조금이나마 분위기를 띄우고 싶어서였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일화를 전하면서 “전 세계 은행의 암울한 실적 발표는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는 한 앞으로 ‘후렴구(refrain)’처럼 반복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내의 주요 금융지주사는 올해 상반기에 이어 3분기에도 ‘실적 축포’를 쏘아올렸다. 하지만 표정엔 그림자가 가득하다. 기준금리 인하가 줄줄이 예고되면서 ‘이자장사’ 효율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유로존 은행을 덮친 저금리 위기는 남일이 아니다. 내년부터 시행될 ‘신(新) 예대율 규제’와 맥없이 떨어지는 주가는 근심을 더한다.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주요 금융지주사는 역대 최고 실적을 거뒀다. 당기순이익만 봐도 신한금융지주 9816억원, KB금융지주 9403억원, 하나금융지주 8360억원 등으로 시장 전망을 웃돌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순이익 3조원 클럽’을 가뿐히 넘길 것으로 보인다. 우리금융지주는 오는 29일 실적을 발표한다.

그러나 ‘호시절’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투명하다. 은행 수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순이자마진(NIM)은 계속 내리막이다. 올해 3분기 순이자마진을 보면 KB국민은행 1.67%, 신한은행 1.53%, KEB하나은행 1.47%으로 각각 전분기보다 0.03% 포인트, 0.05% 포인트, 0.07% 포인트 내려갔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최대 0.09% 포인트 감소한 곳도 있다. 순이자마진은 들인 자산 대비 이자 이익을 얼마나 벌어들였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순이자마진은 은행업을 주력으로 하는 국내 금융지주사의 ‘심장’과도 같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4분기는 ‘가시밭길’이다. 순이자마진 하락은 물론 내년부터 시행될 예대율 규제로 가계대출에 제동이 걸렸다. 기업은 발행금리가 싼 회사채에 몰두하면서 은행 대출을 외면한다. 금융지주사들이 올해 하반기 들어 특판예금, 커버드본드(우량자산 담보 채권) 발행 등으로 급한 불을 끄는데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비이자 부문(펀드·신탁·방카슈랑스 수수료, 글로벌 사업 등)에서 뚜렷한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금융지주사 전체 이익 중 70%는 이자수익이다. 최근 해외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부실 판매 논란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하기도 쉽지 않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비이자 영업을 확대하고 싶어도 은행이 할 수 있는 사업이 몇 개 없다. 해외 영업을 확장하기엔 거대 글로벌 금융회사를 이겨낼 재량이 없다”고 토로했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금융지주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평균 0.42배”라며 은행주가 주식시장에서 평가절하를 받는 주된 원인으로 ‘이자에 기댄 영업’을 꼽았다. 저금리 속에서 이자수익만 고수하면 외국인 투자자의 눈길을 끌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서 연구원은 “핀테크 업체뿐만 아니라 산업 간 경계를 허무는 협업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