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위해 국가 주도로 총 2042억위안(289억달러·33조9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2014년 조성한 1390억위안(196억 달러) 규모의 유사한 펀드에 비해 90억 달러 가량 많은 수준이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지원 기금에 대해 미국 기업과의 불공정 경쟁을 초래하는 ‘국가 자본주의’라고 비난한 바 있어 반도체 펀드가 양국 갈등의 불씨가 될지 주목된다.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과의 기술격차를 줄이고, 국내 반도체 업체를 육성하기 위해 지난 22일 정부 지원 형태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했다. 2042억 위안 규모의 반도체 펀드에는 중국 국영 담배회사와 중국개발은행 등을 포함해 중앙 및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업들이 참여했다.
새로운 반도체 펀드는 미국으로부터 기술 독립을 이뤄내고 글로벌 기술의 리더가 되겠다는 야심을 계속 추구하겠다는 중국의 결심을 보여준다고 WSJ는 평가했다.
제프문 전 미 무역대표부 중국담당 부대표는 “이는 중국이 무역전쟁을 초래한 국가 주도의 관행과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WSJ은 반도체 펀드를 ‘중국의 새로운 군자금(war chest)’이라고 표현하며 “미국의 새로운 우려를 자아낼 수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은 중국이 2014년 정부 기관과 국영 기업들의 출연으로 1390억위안 규모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하자 중국 기업들에 ‘불공정한 우위’를 제공하는 ‘국가 자본주의’라고 비판했다.
미 무역대표부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중국 정부가 국가 전략 목표를 위해 펀드 설립에 깊이 관여했다”고 지적했다.
2014년 조성된 중국의 반도체 펀드는 수십개의 프로젝트에 수십억달러를 쏟아부었다. 그 중에 중국 반도체 기업 YMTC(양쯔 메모리 테크놀러지)도 포함돼 있다. YMTC는 올해 64단 3D 낸드플래시를 양산한 뒤 내년부터 128단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4월 YMTC를 방문해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 심장이 약하면 덩치가 아무리 커도 강하다고 할 수 없다”며 ‘반도체 심장론’을 역설했다.
하지만 대규모 펀드 조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핵심 반도체기술에서 인텔이나 삼성, 대만의 TSMC 등에 비해 몇 년씩 뒤쳐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YMTC도 ‘64단 양산’을 선언했지만 안정적인 생산 체제를 갖추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 기술기업들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심해지는 것도 반도체 굴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올해 25㎚(나노미터·1㎚=10억분의 1m)급 D램을 양산하려던 국유기업 푸젠진화(JHICC)는 지난해 10월 미국 당국의 ‘거래 제한’ 조치로 존폐 기로에 서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푸젠진화는 미국 마이트론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중국은 또 반도체 제조 장비 분야에서도 미국과 네덜란드, 일본 등 해외 기업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미국 주도의 제재 조치에 약점을 갖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수입 의존도는 원유보다 더 높다. 중국 측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3121억달러어치의 반도체를 수입했다. 같은 기간 원유 수입액 2403억달러와 비교해 반도체 수입액이 25% 가까이 많은 셈이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