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노동했다. 노동을 막하지 않았는데 하루하루 목숨 걸고 하셨는데 사람들은 그 일을 막노동이라고 불렀다. 딸은 그게 창피해서 아버지를 감추며 살았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 보자. 왜 흙수저들은 부모의 존재를 숨겨야 할까. 딸은 신간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수오서재)에 이렇게 적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난과 무지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원망도 창피함도 되어서는 안 된다.”
딸은 그동안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기록했다. 차마 하지 못했던 말, 그것들을 어떻게든 꺼내지 않으면 내 부모가 부정될 것 같았다고 했다. 이 책은 프리랜서 아나운서인 임희정이 아버지의 막노동과 어머니의 가사노동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담담하게 적은 에세이다. 그러나 나 힘들었어, 나 잘못했어, 나 괴로웠어 하는 푸념이 아니다. 임희정은 책의 마지막 문단에 이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아버지의 위대한 삶이, 대단한 생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이 책은) 아빠의 평생 직업인 막노동 앞에 붙은 ‘막’이라는 한 글자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이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공사장으로 향했다. 노동, 밥, 잠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반복은 50년 넘게 계속됐다. 문자를 보낼 줄 모르는 아버지에게 가끔 ‘연락 바랍니다’라는 문자가 올 때가 있는데, 그 땐 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묵묵히 돈을 아끼고 쌀을 씻었다. 이것도 50년 넘게 계속됐다. 혼자 제주살이 하는 딸이 부모 제주여행 시켜드리겠다고 초청했을 때 엄마의 첫 번째 여행 코스는 딸 집의 냉장고를 채워 넣는 것이었다.
책엔 아버지와 어머니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작지만 위대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임희정은 출판을 망설였다고 했다. 누군가는 변변찮다고 평가할지 모를 부모의 삶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게 부모에게 해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돼서다. 주눅 든 딸이 부모에게 물었다.
“책 낼 때 엄마랑 아빠랑 나랑 셋이 찍은 사진 그거 올려도 돼?”
“괜찮아! 암시롱 안 해!”
자신들의 직업이, 삶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는 증명이자 딸이 그 어떤 것을 해도 암시롱 안 한 존재라는 의미였다. 책엔 그 흔한 삽화도 없이 사진만 달랑 세 장 있는데, 그 중 두 장이 바로 이 사진이다.
너무 공감이 가서 어쩔 도리 없이 밑줄부터 긋게 되는 문장도 한두 개가 아니다. 저자의 필력 덕분인지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지점이 적지 않다. 특히 흙수저로 태어나 부모를 감추고 싶었던 독자라면 자주 코끝이 매울 것이다. 저자는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으면서 화제가 됐었는데 이때 글이 가진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큰 공감과 위로는 그저 뻔한 대답이 아닌 자전적 담론임을, ‘나는 그랬다’고 꺼낸 한마디가 ‘나도 그랬는데’로 돌아오는 선순환임을 잘 안다. 너무 깊어 꺼내기 힘들었지만 팔을 뻗어 어딘가에 내놓았을 때, 박수 쳐주고 독려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열심히 부모님의 이야기를 쓴다. 위로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나를 키워낸 부모의 생, 그 자체가 위안이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