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신임 경산상, 44일만에 낙마…‘꼼꼼한 선물리스트’에 발목

입력 2019-10-25 18:24
기자회견 하는 스가와라 잇슈 경제산업상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금품을 뿌렸다는 의혹에 휩싸인 스가와라 잇슈 일본 경제산업상(경산상)이 25일 아베 신조 총리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입각한 지 44일 만이다. 스가와라 경산상은 각료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현안이 산적한 데 임기 도중 그만두게 돼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밝혔다.

일 주간문춘은 지난 10일 “스가와라 경산상이 지난 2006~2007년 자신의 지역구인 도쿄 네리마구 주민 등에게 멜론과 명란젓, 게 등의 선물을 돌렸다”고 보도했다. 그의 전 비서의 폭로였다. 비서가 작성한 선물리스트에는 여름과 겨울 계절을 나눠 멜론, 명란젓 등의 품명과 함께 총 239개분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연락처에는 지역구 주민 외에도 아베 총리 등 정치권 유력 인사의 이름도 포함돼있었다. 실제 명단에 포함된 지역구 주민 다수는 “멜론이나 게를 택배로 받은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후 일본 언론의 추가 보도가 이어지면서 스가와라 경산상이 오래 전부터 체계적으로 금품을 돌렸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NHK방송은 “스가와라 경산상의 2006년 선물리스트에도 국회의원 등 정치인, 지역구 유력자 등의 이름이 적혀있었다”고 보도했다. 전 비서는 NHK에 “신세를 진 정도에 따라 A~C로 등급을 나눴다”며 “A등급 인물에게 가장 비싼 물건을 보냈다”고 말했다.

의혹이 증폭되자 야당은 의회에서 스가와라 경산상을 향해 “유권자에게 금품을 건넨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그는 처음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정했지만, 이후 “금품만을 현금이라고 생각해 없다고 답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선물을 돌렸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함으로써 논란을 자초한 것이다. 이 와중에 스가와라 경산상의 한 비서가 지역 유권자들에게 부의금을 전달했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일본 공직선거법상 의원 본인이 직접 조문하지 않고 부의금을 전달하면 위법이다.

아베 총리는 “임명 책임은 내게 있다. 국민에게 깊이 사과드린다”며 즉각 수습에 나섰다. 후임으로는 자민당 7선 중의원 의원인 가지야마 히로시 전 지방창생담당상이 내정됐다. 야권이 스가와라 경산상의 금품 살포 의혹를 문제 삼아 아베 총리와 자민당이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개헌 논의의 발목을 잡으려는 모습을 보이자 조기 진압에 나선 것이다.

6선 중의원인 스가와라 경제산업상은 지난 9월 11일 개각 때 경산성 수장에 올랐다. 아베 내각 핵심 인사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극우 성향의 ‘다 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의원 모임’ 회원이기도 하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