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원의 저지에 호언장담했던 ‘10월 31일 무조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보리스 존슨 총리가 결국 ‘의회 해산’을 의미하는 12월 조기 총선 승부수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야당인 노동당이 응할 가능성이 낮고, 집권 보수당 의원들조차 전임 테리사 메이 총리가 지난 2017년 브렉시트 협상을 앞두고 국민의 재신임을 받겠다며 조기 총선을 치렀지만 실패했던 일을 떠올리며 두려워하고 있어 하원 통과가 불투명하다.
존슨 총리는 24일(현지시간)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에게 서한을 보내 “유럽연합(EU)이 영국 정부 요청대로 브렉시트 시한을 내년 1월 말로 3개월 연기하는 일을 허용한다면 조기 총선을 치러야 한다”며 “다음주 하원에서 오는 12월 12일 총선 실시 여부를 표결에 부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11월 6일 자정 이후 의회가 해산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영국 법은 선거일 25일 전에 의회를 해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이콥 리스 모그 보수당 하원 원내대표는 정부가 오는 28일 조기 총선 동의안을 상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존슨 총리는 자신은 여전히 오는 31일 예정된 브렉시트 시한을 11월 15일이나 30일로 단기 연기하는 방향을 선호한다며 이 경우 브렉시트 합의안이 노동당 지지하에 의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영 파이낸셜타임스(FT)는 “존슨 총리가 오는 31일까지 브렉시트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브렉시트 교착의 원인을 ‘파탄난 의회’로 지목한 것”이라고 전했다. 미 CNN방송도 “존슨 총리가 ‘더 이상 쓸 수 있는 수단이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존슨 총리는 서한에서 “오랫동안 하원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총리직을 수행했다”며 야당들의 총선 동의안 지지를 촉구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집권 보수당이 지지율상 노동당을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 판단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기 총선 동의안이 상정되도 의회가 이를 통과시킬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조기 총선 개최를 위해서는 하원 전체 의석(650석)의 3분의 2 이상, 즉 434명 의원의 찬성이 필요하지만 보수당 의석이 288석에 불과해 노동당(245석)의 지지 없이는 통과가 불가능하다. 현지에서는 노동당인 존슨 총리의 총선 제안을 저지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코빈 대표가 ‘노 딜(합의 없는) 브렉시트’ 위험이 완전히 없어져야 조기 총선에 동의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브렉시트가 끝나야 조기 총선에 응하겠다는 의미다. 앞서 존슨 총리가 두 차례 상정한 조기 총선 동의안도 모두 하원에서 부결됐다.
영 가디언은 보수당 내에서도 조기 총선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전임 메이 총리가 “야당의 반발 탓에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에 차질이 있다”며 조기 총선을 제안했지만 참패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하원 과반을 확보하고 있던 보수당은 여론조사상 노동당을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오자 총선을 통해 의석을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선거 후 어떤 정당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는 결과를 얻었다. 보수당은 12석을 잃어 겨우 제1당을 유지했고, 메이 총리의 리더십은 무너졌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