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백남기 ‘병사’ 기재한 서울대병원 5400만원 배상하라”

입력 2019-10-25 14:22
지난 2016년 11월 5일 영결식장으로 향하는 백남기 농민 운구행렬. 뉴시스

농민 고(故) 백남기씨의 사인을 ‘병사’로 기재한 주치의와 서울대병원이 5400만원을 배상하는 선에서 유족들과 화해하라는 법원의 권고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부장판사 심재남)는 백씨 유족이 서울대병원과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를 상대로 낸 1억35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 측이 총 5400만원을 원고 측에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25일 밝혔다. 소송 당사자인 병원 측과 백 교수가 2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이번 결정은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

지난 2015년 11월 14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한 백씨는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중태에 빠진 뒤 이듬해 9월 25일 숨졌다. 당시 서울대병원 측은 백선하 교수의 의견에 따라 백씨의 사망진단서 사망 원인을 외부충격에 따른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했다.

이를 두고 서울대 의대 재학생, 동문 등이 잇따라 성명을 내는 등 논란이 일었다. 백씨의 사인은 2017년 6월 병원 의료윤리위원회가 백 교수에게 수정을 권고하고 나서야 ‘외인사’로 공식 변경됐다.

백씨 유족은 불필요한 논란 때문에 한 달 동안 백씨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고,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2016년 12월 백 교수와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지난 2016년 10월 3일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서울대학교병원 서성환홀에서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언론 브리핑을 마치고 고개를 숙이는 백선하 교수. 뉴시스

이날 재판부는 “백선하 교수가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기재하게 한 행위는 의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서울대병원은 이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망인은 경찰의 직사 살수로 쓰러진 이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망했으므로 사인을 ‘외인사’로 기재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사망원인 중 직접 사인으로 기재한 ‘심폐 정지’는 사망의 증세이지 사망의 원인이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의료진이 경찰에 백씨의 의료정보를 누설한 행위 역시 불법행위이므로 병원에 사용자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백씨 유족은 법원의 결정에 대해 “진단서의 기재는 통상 의사의 재량이 넓게 인정되는 영역임에도 위법성을 인정하는 취지로 화해 권고 결정을 한 것은 의미 있는 결과”라고 환영했다. 백 교수와 서울대병원 측은 아직 화해 권고 결정 수용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박실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