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51세 이건희는 신경영 선언, 51세 이재용의 선언은 무엇인가”

입력 2019-10-25 14:13
“심리 중에도 당당히 기업총수로 해야 할 일 해 달라”…이 부회장, 고개 끄덕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의 총수로서 어떤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로 본 심리에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가 25일 첫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한 말이다. 재판부가 심리를 시작하면서 피고인에게 이런 당부의 말을 전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정 부장판사는 35분가량 진행된 재판 말미에 “공판을 마치기 전 몇 가지 사항을 덧붙이고자 한다”며 당부의 발언을 했다.

그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고자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삼성그룹 총수 (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나”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출석한 뒤 귀가하면서 차량에 타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정 부장판사는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는 무관함을 먼저 분명히 한다”고 전제한 뒤 “다음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삼성그룹이 이 사건과 같은 범죄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라며 몇 가지 제안을 했다.

삼성그룹 내부에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할 것, 재벌경영 체제의 폐해를 바로잡을 것 등이다. 정 부장판사는 이어 “마지막으로 이재용 피고인에게 당부드린다”며 “어떠한 재판 결과에도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심리에 임해주길 바란다. 심리 중에도 당당히 기업총수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 부장판사의 당부의 말에 이 부회장은 재판부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한편 이 부회장 측은 대법원이 추가로 인정한 뇌물 혐의에 대해 유·무죄를 다투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린 판단을 뒤집으려 공방을 벌이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 파기환송심에서는 양형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재판부는 다음 달 22일 2차 공판을 열어 유·무죄 판단 관련 심리를 하고, 12월 6일 공판 때는 양형 문제에 대한 양측의 주장을 듣기로 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