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예고 없는 ‘대학입시 정시 비중 상향’ 언급 이후 공황 상태에 빠졌던 교육부가 24일부터 하나둘 정리된 입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줄곧 정시 비중 확대에 반대해 왔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확대를 공식화했다. 교육부는 일단 정시는 기존 룰을 최대한 지키는 ‘마지노선’을 설정했다. 교육부의 방어선이 유지될지는 25일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교육관계장관회의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교육부는 2022학년도부터 대학들에 정시로 30% 이상 뽑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공론화를 통해 만들어진 이른바 ‘30%룰’이다. 교육부는 ‘30%’란 숫자에 방점을 찍고 정시로 30%만 뽑아도 된다고 대학들에 권고해왔다. 그러나 대통령이 정시 비중 상향을 주문했으므로 앞으로는 ‘이상’에 방점을 찍고 대학들을 움직이겠다는 입장이다. 30% 이상 안에는 40%, 50%도 포함되므로 굳이 지난해 공론화를 통해 결론 난 30%를 숫자를 건드리지 않아도 정시 확대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정시 비율 상향도 전체 대학이 아닌 일부에서만 실시할 생각이다. 교육부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비율이 높은 서울 소재 상위 15개 대학 정도만 정시 비율을 조정하자는 입장이다. 이들 대학은 학부모·학생이 선호하는 대학들로, 불공정 논란은 주로 이들 대학에서 발생해 왔다. 학생부교과전형 비중이 높거나 학생 충원 자체가 어려운 비수도권 대학까지 정시 비율 상향을 강제할 필요가 없다는 게 교육부의 속내다.
교육부는 대학이 정시 비중을 상향하게 할 지렛대를 갖고 있다. 지난달부터 학종 비율이 높거나 특목·자사고 출신이 많은 대학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건국대 광운대 경희대 고려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포항공대 춘천교대 한국교원대 홍익대가 대상이다. 교육부는 이들 대학 중 고교 등급을 매겨 학생 선발에 이용했거나 입시 공정성 훼손 의심 사례가 나오는 대학 4~5곳을 추려 특별 감사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계속 이어진 등록금 동결에 따른 재정난,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대학들은 정부와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교육부가 정시 확대를 요구하면 들어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이들 대학과 물밑 접촉해 내년 4월이 데드라인인 2022학년도 대입전형시행계획에서 정시 비율을 40% 이상까지 끌어올리도록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대학들은 30%룰에 따라 30% 수준에 맞출 계획이었는데 10% 포인트 더 올리는 것이다. 서울대의 경우 예외적으로 2022학년도에 정시로 30.3%를 뽑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따라서 서울대는 2023학년도 이후 정시 비율을 40~50% 수준으로 올릴 수 있다.
정시 비율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대입개편 공론화 과정에서 정시 비율을 45% 이상으로 올리는 안이 시민참여단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대학이 45% 수준까지 정시 비율을 올리면 수시에서 이월하는 인원까지 포함해 실질적 정시 비율은 50% 수준에 육박할 수 있다.
교육부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조국 사태’로 촉발된 대입 개편은 더불어민주당 내 설치된 교육공정성강화 특별위원회가 키를 쥐고 있다. 다만 시·도교육감 등 진보 교육계가 정시 확대에 반대하고 나서 25일 교육관계장관회의에서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문 대통령의 고심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