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오바마정부 주도로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에서 탈퇴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협약 공식 탈퇴를 준비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탈퇴 효력이 발생하는 시점은 내년 미국 대선 직후여서 환경 이슈가 대선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에너지 콘퍼런스에 참석해 규제완화 정책을 내세우며 “나는 끔찍하고 일방적인 기후협약에서 미국을 빠져나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파리협약은 미국의 (에너지) 생산업체를 과도하게 규제한 반면 외국 기업에는 처벌도 하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을 허용해왔다”며 “외국 기업은 부유하게 만들면서 미국인만 처벌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구체적인 계획은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파리협약에서 공식탈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세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날 보도했다. 소식통들은 “유엔에 공식 탈퇴 통보서를 보내겠다는 백악관의 계획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며 “이를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제출할지, 기다릴지 대해 내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무부는 ‘유엔에 보낼 탈퇴 통보서 초안 작성 여부’에 함구하면서도 “미국은 파리협약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NYT는 전했다.
미국이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한다고 해서 바로 탈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파리협약 규정에 따라 미국이 유엔에 탈퇴 통보 서한을 제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은 오는 11월 4일이고, 이로부터 1년 후에야 탈퇴 효력이 발생한다. 이는 2020년 11월 3일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대선일 직후다. NYT는 내년 대선에서 파리협약이 핵심쟁점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청소년 환경단체 ‘기후동원’ 대변인은 “불과 몇 주 전에 전세계 수백만명이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며 “이것(협약 탈퇴)은 다음 세대를 배신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니라 탄덴 ‘아메리카 진보 센터’ 회장은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하고 기후변화 등에 대한 리더십을 러시아나 중국에 넘겨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은 2020년 만료 예정인 교토의정서를 대체해 이후의 기후변화 대응을 담은 국제협약이다. 교토의정서가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했다면, 파리협약은 189개국 당사국 모두에 구속력을 가진다.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또 5년마다 상향된 감축목표 제출하고 이행 여부를 검증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수준에서 26~28%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미국이 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파리협약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한 바 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