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결정하면서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과 상의는커녕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정책 결정이 핵심 참모들과 협의 없이 독단적, 충동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매티스 전 장관은 평정심을 잃었고 실제 사임하기 반년 전부터 사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매티스 전 장관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가이 스노드그래스의 회고록 ‘위치 사수: 트럼프 행정부 국방부의 내막’의 내용 일부를 입수해 23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스노드그래스는 이 책에서 매티스 전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했으며 국방부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스노드그래스는 그 사례로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결정을 내린 것을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한 후 열린 단독 기자회견에서 한·미 훈련 중단을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사전에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미 국방부로서는 기습을 당한 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매티스 전 장관의 인내심은 이 시기쯤 바닥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매티스 전 장관은 1차 북·미 회담 직후 열린 비보도 전제 기자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미국을 강하게 만들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매티스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 정책은 미국을 강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단지 짧은 시기 동안 강한 것처럼 보이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스노드그래스에 따르면 매티스 전 장관은 한때 트럼프 대통령이 고도의 정치적 기술을 갖고 있다며 존경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매티스 전 장관은 대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는 메시지를 내놓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을 무시하고 충동적 결정을 내리는 일을 반복하는 데 대해 불만을 쌓아왔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도 매티스 전 장관을 노골적으로 괄시했다고 스노드그래스는 주장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해 4월 취임한 직후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해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매티스 전 장관과 공유하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볼턴 전 보좌관이 회의석상에서 매티스 전 장관의 발언을 여러 차례 끊기도 했다. 당시 회의에 배석했던 스노드그래스는 “나는 그들의 무례함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매티스 전 장관은 지난해 중순쯤 존 켈리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을 찾아가 연말에 사퇴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매티스 전 장관은 실제로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주둔 미군 철군 발언에 항의하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팎의 반발을 이기지 못하고 발언을 철회했지만 결국 이달 초 미군 철수를 강행했다.
매티스 전 장관이 어떤 심경으로 트럼프 행정부 내각에서 일했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매티스 전 장관은 볼턴 전 보좌관 등 다른 전직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과 달리 정치적 발언을 최대한 자제해왔다. 매티스 전 장관 측은 성명에서 “스노드그래스는 정책 결정 권한이 전혀 없었던 하위 직원이었을 뿐”이라며 “그가 책을 낸 것은 몰지각한 행동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책에 담긴 내용의 진위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