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8차·10차 사건 증거물서 이춘재 DNA 안 나왔다

입력 2019-10-24 15:20 수정 2019-10-24 16:04

화성연쇄살인사건 8차·10차 사건 증거물에서는 피의자 이춘재(56)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 경찰은 8차 사건의 증거물은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에도 유의미한 증거로 분류되지 않아 이러한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됐던 만큼 다른 방법으로 이씨 자백의 신빙성을 검증하겠다는 입장이다. 10차 사건 증거물은 애매한 부분이 있어 몇 차례 정밀분석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이씨의 DNA가 증거물에서 나온 사건은 3, 4, 5, 7, 9차 사건 등 모두 5건이고, 2차 사건 증거물에 대한 DNA 분석은 진행 중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24일 브리핑에서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8차·10차 사건 증거물에서 이씨의 DNA를 비롯해 다른 남성의 DNA는 나오지 않았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8차 사건 증거물은 이미 당시에도 의미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어서 애초부터 피의자의 DNA가 나올 가능성이 희박했다”며 “10차 사건 증거물은 일부 분석 결과가 나온 다른 사건들보다 앞서 분석을 의뢰했지만 국과수에서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몇 차례 정밀분석을 진행했지만 피의자의 DNA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모(당시 13세)양의 집에서 박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과거 범인이 검거돼 처벌까지 끝났지만 이씨는 이를 포함해 10건의 화성사건 모두와 충북 청주 등에서 저지른 4건 등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모(62)씨는 “경찰의 강압수사 때문에 거짓자백을 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재심 청구를 준비 중이다.

이에 경찰은 윤씨의 변호인이 재심 청구를 위해 요구한 정보공개와 관련당시 윤씨의 피의자 신문조서와 발부된 구속영장 등 총 9건의 문건을 공개하기로 결정하고 빠른 시일 내에 윤씨 측에 제공키로 했다.

경찰은 과거 이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들의 진술과 당시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진범 논란이 불거진 이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또 이씨가 이 사건을 자백할 당시 범행 장소 등에 대해 그림을 그려가며 구체적으로 설명한 사실을 진범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비중 있게 다룰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8차 사건에 대해서는 범인으로 지목돼 처벌받은 윤 씨와 당시 수사 관계자들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며 “피의자 자백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고 있는데 진술이 사실일 경우에는 윤씨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허위자백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가혹행위가 있었는지도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자백한 사건들에 대해 현재까지 일관성 있게 진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 입건 이후 8차에 걸쳐 조사하며 신문조서를 작성하고 사건별 중요사안에 대해 보강조사를 하고 있다”며 “피의자의 범행동기에 대해서는 조금 더 조사한 뒤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경찰은 이씨가 자백한 살인사건 중 1989년 7월 18일 화성군 태안읍에서 발생한 김모(당시 8세)양의 실종사건에 대해 그의 시체유기 장소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이 사건과 관련 자신이 김양을 살해했고 인근에 유류품과 함께 김양의 시신을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이씨가 지목한 장소와 실제로 유류품이 발견된 장소와는 거리가 100여m 이상 차이가 있어 경찰은 이씨의 기억이 왜곡됐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당시 경찰은 김양이 실종된 지 5개월 여가 지난 뒤 인근 야산에서 치마와 책가방 등 10여점의 유류품을 발견했다.

이 가운데 7점에 대한 감정을 의뢰해 3점에서 인혈반응이 나왔지만 혈액형은 판정 불가라는 결과를 통보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양은 당시 ‘가출인’으로 분류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종 당일까지도 학교를 잘 다니던 만 여자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진데다 유류품까지 발견됐음에도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한 것은 당시 경찰의 안일한 대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김 양의 부모가 두 차례에 걸쳐 수사 요청을 했음에도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됐다.

수사본부는 과거 수사기록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으나, 당시 경찰이 학교에 잘 다니던 나이 어린 학생을 가출인으로 판단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사기록에서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 경찰은 이 중 유류품 7점을 국과수에 감정을 맡기면서도 유류품 발견 사실에 대해 김 양의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수사관들에게 유류품 발견 사실을 왜 알리지 않았는지에 관해 물어봤지만 너무 오래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