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극협회 아르코극장 대관탈락 사태와 ‘개구리’ 논란으로 점화된 박근혜 정권 블랙리스트와 검열사태는 조직적이고 경악스러운 방법으로 한국연극계로 침투해 지원사업과 예술인들의 묵시적인 배제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민낯의 허물이 벗겨질 때 연극계는 연대와 절규로 맞서야 했다. 국정농단 사태이후 촛불정권으로 이동하면서 “더 이상의 침묵”은 용납 할 수 없었다. 한국 연극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정권이 공공기관을 통해 블랙리스트와 예술 검열로 침투한 싸움은 연극인들이 자발적 작품으로 참여하고 연대해 무대에서 진검승부를 벌이는 ‘권리장전-검열각하’(2016)로 점화되면서 ‘박근혜정부 연극계검열백서’를 제작했고 여진(餘震)의 싸움은 지속중이다. 연극은 더 이상 허구와 상상의 삶과 인생, 사회를 그려내는 공간이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고 쏟아내는 다큐멘터리식의 절규의 공간으로 이어지며 블랙리스트의 어둠은 끝나지 않는 통증과 고통으로 불협화음에 저항하고 있다.
깨어진 약속 그리고 ‘연대’의 변주
이후 연극계는 왜곡된 역사, 비정규직문제, 노동환경, 사회적 참사, 성소수자, 극장의 공공성의 문제와 사회적 갈등들을 무대로 전이시켜 표현의 ‘연대’(連帶)를 해 왔고 은폐되거나 조작의 기술로 가려진 민낯의 질긴 허물들은 쌓여지고 있다. 이렇듯 시민사회의 절규와 광장의 함성은 시대와 역사,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성숙하게 변화시켜 왔다. 70년대 이후 노동환경의 문제를 다룬 노동극의 변주도 한국사회 지형에서 튕겨 나오는 노사(勞使)의 불협화음을 다양한 형태로 공연되어 오고 있고 80년대 마당극은 날카로운 조롱과 풍자로 독재정권에 저항해왔다. 이러한 시대변화에 한국연극도 세월호 참사, 서울연극협회 아르코 대관탈락, 블랙리스트와 검열사태를 겪으면서 비정규직문제, 사회적 참사와 노사의 사회적 갈등과 노동현실의 사회적 절규들을 적극적인 표현방식으로 한국사회 문제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2019.9.27~10.13 연우소극장)는 그동안 사회적 참사, 성소수자, 감정노동자들의 삶에서 파동(波動) 거리는 한국사회 이면을 그려낸 이연주 연출이 작품을 쓰고 평택 미군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다룬 <일곱집매>와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가압류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삶을 그려낸 <노란봉투>로 사회적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내고 있는 이양구 작가가 연출해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연극은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으로 기록된 파인텍 사태를 모티브로 그려내고 있으면서도 극적인 타협을 이루어낸 이 사태를 중심으로 다루지 않는다. 파인텍 사태는 노조원이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에서 공장재가동과 복직, 노사의 ‘깨어진 약속’을 외치며 426일 만에 극적인 타협으로 막을 내린 사태로 기록되고 있다. 굴뚝농성은 2014년 경북 구미 스타케미칼(현 파인텍)굴뚝농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찌 보면 <이게 마지막이야>는 역주행 하고 있는 슈퍼자본주의 시장으로 달리며 한국사회를 견인하고 있는 불편하고 불합리한 기업과 노동시장, 고용착취, 비정규문제와 근로기준법 등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를 겪으며 살아가는 노동근로자과 가족들의 이야기다. 여전히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전광판, 크레인, 철탑, 버스, 굴뚝으로 올라서고 매달리며 여전히 끝나지 않는 고통으로 복직과 ‘약속이행’을 촉구하며 살아가는 한국사회 노동근로자들과 가족들이 살아가는 절박한 삶에서 미동거리는 물결처럼 연출은 무대로 올려놓는다. 이들 삶을 투영해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불편한 사회구조에서 바라보는 연대와 약속, ‘공감의시선’은 무엇인가라는 사회적 물음이다. 여전히 마지막이 될 수 없는 질긴 희망의 기다림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노동’의 의미와 ‘연대’의 구호들이 현실사회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극중 인물 5명을 통해 각기 다른 삶과 시선들이 담아진다.
끝나지 않는 삶의 고통과 불협화음의 ‘약속’
연극 <이게 마지막 이야>의 배경은 파인텍 사태의 고공농성 현장을 비켜간다. 무대는 ‘24시간 편의점’이다. 무대전면은 도로에서 편의점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구조다. 편의점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우측으로 좌측공간으로는 실외 테라스로 보이는 편의점 외경그대로다.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외부현장을 담아내기 위해 작동되고 있는 ‘CCTV’ 한 대와 동네 도심까지 들어서 있는 ‘대형M마트’ 간판이다. 거리 주변으로 ‘노동가’소리가 들려온다. 이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정화(이지현 분)의 남편은 굴뚝 고공농성이 끝난 뒤에도 복직을 스스로 파기하며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방에만 틀어박혀 살아간다. CCTV는 안전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고용주가 근로노동자를 바라보는 자본의 시선이다. 편의점 점장이자 고용주(김상보 분)는 편의점 외부에 매달린 CCTV를 작동시키며 아르바이트생들이 유통기간을 넘긴 폐기음식을 몰래 먹었다는 이유를 걸고 ‘횡령’으로 고소한다고 협박해 노동을 착취하며 근무 외 수당을 주지 않는 편법으로 2호점을 낼 정도로 편의점 몸집을 키우고 있는 인물이다.
이 극에 중심인물인 정화는 남편이 농성의 현장으로 나간 7년 전부터 인근 대형마트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어렵게 책임지며 살아왔다. 장기투쟁의 고공농성으로 희망을 안고 굴뚝을 내려온 뒤에도 정화가족은 여전히 ‘희망의 길’로 걸어갈 수 없는 삶이다. 더딘 삶이 속도를 낼 수 없는 것은 연대와 약속이 불협화음으로 깨어진 내면의 상처로 얼룩져 있다. 작가는 고공농성이 끝난 뒤에도 스스로 복직을 파기하며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없는 남편을 통해 반복되며 깨지고 있는 ‘연대’와 사회적 약속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여전히 불신으로 깨지고 얼룩지며 ‘노동가’가 울려 퍼지는 사회는 ‘이게 마지막’이 될 수 없는, 끝나지 않는 삶의 고통과 통증으로 내몰리고 있는 절박한 삶의 현실이다. 7년을 기다려도 원래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정화 삶을 연출은 담백하게 그려간다. 남편과 연대하며 고공농성을 함께한 후배 명호(조형래 분)는 전국 농성현장과 연대하고 파업이 끝난 뒤에도 달라지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정화는 남편에게 준돈 300백만원 받으려고 편의점으로 찾아온 명호에게 “진짜 약속이 뭔지도 몰라? 마지막이라고, 꼭 지키겠다고 하더니..(중략) 노조며, 일자리며 다 지킬 것처럼 하더니 사람하나 못 지켰잖아!”라고 내면의 상처들을 꺼내 놓고 명호는 “약속 지키려고요(중략) 전광판 위에서 혼자 외로울 거 아니까. 형, 누나 찾아오는 게 아니라 연대하러 오는 거예요. 그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약속 이예요” 라는 말로 정화마음을 받아낸다. 두 자녀 학습지 3개월 치를 밀린 채 편의점 알바를 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정화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편의점 업주인 점장이 근로기준법을 악용하며 노동을 편법으로 착취하는 냄새에 쓴웃음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고 생계형 아르바이트로 편의점 알바, 피자배달 등 생활전선에 당차게 뛰어 들며 한국사회 삼포세대를 살아가는 알바생들의 체불임금 800만원을 당차게 받아내고 ‘근로기준법준수’를 침묵으로 홀로 외치는 보람이를 바라보면서 취약한 노동의 현장과 연대의 의미를 새겨 넣게 된다. 명호를 통해서는 여전히 멈추지 않는 노동현장의 소리를 ‘연대’로 전진할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 노동환경의 문제들을 비춘다.
밀린 학습지 구독료를 받아오라는 회사의 요구에도 정화의 삶을 애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방문학습지 선생님 선영(황순미 분)은 편의점 앞을 몇 차례 찾아오면서도 밀린 학습지 대금을 힘겹게 꺼내놓는 내면을 통해 노동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편의점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유리문에 ‘근로기준법을 준수’를 써 붙이고 홀로 침묵의 시위를 하는 보람이를 (정화, 명호, 선영)은 열쇠가 있으면서도 문 밖에서 공감과 시선의 연대로 바라보는 것으로 극은 끝난다.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는 연대와 약속의 사회적 의미를 통해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고공농성을 끝낸 아내로 절박한 삶을 살아가는 정화를 중심으로 포개놓은 극중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사회 알바생들의 일터인 편의점에서 근로기준법 미준수로 인한 착취의 냄새를 맡게 되고, 점장에게 전달해 달라는 보람이의 체불임금목록을 정화는 전달하지 못하고 편의점으로 찾아오는 보람이를 향해 “영업방해로 문제 될 수도 있어”라며 삶의 현실에서 정화는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또한 남편과 고공농성을 이끌고 전국의 노동현장과 연대해 살아가는 명호는 남편에게 준돈 300만원을 받기위해 찾아오고 ‘약속’을 지키겠다며 돈의 일부를 들고 다시 정화를 찾아온다. 학습지 선생님 선영은 근로자들의 취약한 노동환경과 정화를 바라보는 공감의 시선을 비추고 근무한 편의점 알바생들의 체불임금 800만원 받은 뒤에도 여전히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취약한 노동환경의 사회현실을 고발할 듯 홀로 침묵의 시위를 하고 있는 설정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일상과 투쟁, 일상과 노동, 일상과 고공, 그 사이의 경계를 들여다보려고 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이의 경계는 약속과 연대가 불협화음으로 균열되어 가는 사회구조이며 그 현실사이로 반복되어 가는 파업, 고공농성, 근로기준법을 유린하는 한국사회의 모순과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현실을 그리고자 한 것 같다. 극중 인물 정화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시선들이 포개지는 희곡의 다층적 구조가 극을 이해하는 개연성을 이탈하는 모호함으로 달리면서 설득의 동력은 들어나지 않고 있다.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는 현실의 모순들을 도해해(노동현실, 근로기준법과 노동의 권리, 고공농성과 가족의 삶, 연대의 함의, 사회적 약속 등의 사회적 균열들) 열거하려는 서사전개로 특정적인 소리가 내재되지 않아 아쉽다. 그러나 공간을 세밀하게 움직이는 배우들의 앙상블과 정화로 분한 배우 이지현은 한국사회 노동자 아내로 살아가는 내면을 담담하게 토해내는 연기를 보였다. 연극은 아무리 현실을 모방해도 가공된 허구적 현실에 머물게 되며 그 ‘현실’은 관점에 따라 임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의 표피만 담아낸다면 연극은 무대표현의 구호로 표구될 수 있다.
▲희곡작가이자 연출가 이양구는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별방>이 당선되어 적극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다. 때로는 유쾌하면서도 사회적 문제에 진지하게 성찰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출가로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을 거쳐 극단 해인을 창단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평택 안정리 미군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다룬 <일곱집매>로 서울연극제 우수상, 한국연극 베스트 7, 이데일리 문화대상과 연극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가 쓰고 연출한 <복도에서>는 청소년들의 불안한 내면과 그 간극의 거리를 그려내는 작품으로 2014년 한국연극 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되었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손해배상 가압류로 고통 받은 시간과 삶을 다룬 <노란봉투>는 2015년 레드워드, 한국연극 베스트 7에 선정됐다. 이 밖에 작품으로는 <문밖에서>(2018)는 구성과 연출을 <말없이>는 쓰고 연출을 했다. <작전명: C가 왔다>(2017)는그가 쓴 작품이다.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공연사진은 박태양 작가가 제공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