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코 공주는 여왕이 될 수 있을까…日정부, 여왕 및 여계 왕에 부정적

입력 2019-10-23 17:01 수정 2019-10-23 17:49


나루히토(59) 일왕의 즉위 선포식이 끝나면서 후계 논의가 본격 시작될 전망이다. 마이니치 신문은 일본 정부가 안정적인 왕위 계승 방안에 대한 논의를 재개할 방침이라고 23일 전했다. 다만 일본 정부가 여왕 및 모계를 통해 왕위에 오르는 여계(女系) 왕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나루히토 일왕의 외동딸 아이코 공주의 승계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일본 왕실전범은 남성만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있다. 1947년 만들어진 왕실전범은 왕위 계승 조항의 경우 제국주의 시절인 1889년 메이지 일왕 때 만들어진 구 황실전범을 그대로 가져와 남성만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현재 왕족 18명 가운데 왕위 계승이 가능한 인물은 일왕의 동생 후미히토(53) 왕자, 후미히토의 아들인 히사히토(13) 왕자, 일왕의 작은아버지 마사히토(83) 왕자 등 3명이다. 그리고 내년 4월 27일 후미히토 왕자가 왕위계승 1순위 왕세제(皇嗣)가 됐음을 알리는 행사가 예정돼 있다.

구 황실전범을 만들 때만 하더라도 남자 왕족이 많은데다 4대까지 왕족으로 인정됐다. 하지만 2차대전 패전 이후 왕실전범을 만들면서 왕족의 범위를 2대로 좁히는 한편 결혼하는 공주는 왕적에서 이탈되도록 규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식이 없거나 딸을 낳은 경우가 많다보니 왕족의 수가 줄어들게 됐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그동안 안정적인 왕위 계승을 위한 여러 방안들이 검토돼 왔다. 그리고 여성 왕족이 결혼 후에도 왕족 신분을 유지하게 하거나 여성 일왕 및 여계 계승을 용인하자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파가 “남계 승계의 전통이 무너진다”며 반발한데다 2006년 히사히토 왕자가 태어나면서 이런 논의가 보류됐다.

보수파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아베 내각은 ‘여왕 및 여계 계승’에 부정적이다. 아베 내각의 안정적인 왕위 계승 방안 논의도 왕족 수 감소 대책, 즉 히사히토 왕자에게 왕위가 계승된 이후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마이니치 신문은 전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아버지로부터 왕실 혈통을 물려받는) 남계 계승이 예로부터 예외 없이 유지되어 온 것을 감안해, 신중하고 정중하게 검토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여왕과 여계 왕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거듭 피력했다.

여기에 자민당의 보수 성향 모임 ‘일본의 존엄과 국익을 지키는 모임’은 이날 남성 왕위 계승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제언을 발표했다. 왕실전범 개정 또는 특례법 제정을 통해 옛 남성 왕족을 다시 복귀시켜 왕위 계승 후보군을 늘리라는 것이다. 1947년 왕실전범에 따라 당시 히로히토 일왕의 형제까지만 왕적에 남고 51명의 남성 왕족이 왕적에서 이탈됐는데, 일정한 절차를 거쳐 다시 복귀시키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여왕이나 여계 왕을 허용하자는 논의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이들은 공주가 결혼 후 왕족 신분을 유지하는 것도 반대하는데, 여왕이 민간인 남성과 결혼해서 낳은 아이가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본 역사에서 여왕은 10대에 걸쳐 8명(2명은 중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아버지로부터 왕족 혈통을 물려받은 데다 1대에 그쳤다. 보수파들은 역사 속 여왕은 왕위 계승 문제가 복잡했을 때 잠시 중간적 역할을 했을 뿐이며 여계 왕은 사례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여왕의 등장으로 왕조가 바뀐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다만 보수파의 제안과 관련해 총리 관저 내에서는 “70년 전에 왕실을 떠난 사람을 현대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의 왕위 승계에 대해 보수 세력이 강한 저항감을 보이는 것과 달리 일본 국민 여론은 호의적이다. NHK가 일본 내 18세 이상 남녀를 상대로 지난달 28∼29일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는 여왕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74%에 달했다. 그리고 여계 왕에 대해서도 찬성한다는 의견이 71%에 달했다. 다만 여계 왕의 의미를 아느냐는 물음에 모른다는 답변이 52%, 알고 있다는 답변이 42%였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