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루이비통의 디자이너가 “트럼프는 조크(웃기는 사람)”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루이비통의 전신인 LVMH(Louis Vuitton Moët Hennessy) 그룹과 트럼프 정부의 연대를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에 문을 연 루이비통 공장에 방문한지 3일 만에 터져 나온 목소리다.
니콜라스 제스키에르(Nicolas Ghesquière) 루이비통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인스타그램에 “어떠한 정치적인 행동에도 저항하겠다”며 “나는 이런 연대를 거부하는 패션 디자이너다”고 적었다. 이어 “트럼프는 웃기는 사람이다(Trump is a joke)” “동성애 혐오”라는 해시태그(#)도 함께 달았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 가수 에블린 토마스가 80년대에 발표한 싱글음반 ‘하이 에너지’의 커버 이미지를 첨부했다. 이 음반은 1995년 ‘게이 클래식, 볼륨 1: 무지개를 타다’라는 앨범 모음집에 속했다. 소수자 혐오 발언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LVMH가 연관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제스키에르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바 있다.
루이비통은 프랑스 파리에 자리한 명품 브랜드로 1987년 샴페인과 소냑 제조업체인 모에 헤네시와 합병해 거대 럭셔리 기업인 LVMH 그룹을 설립했다. 크리스챤 디올, 지방시 등 다양한 명품 브랜드를 사들이면서 현재 패션 가죽, 유통, 화장품, 시계 및 보석, 주류 등 6개 분야에 60여개의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제스키에르의 글은 23일 오후(현지시간) 기준 9400여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루이비통에 2013년 영입돼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인 만큼 그의 발언에는 파급력이 있었다. 트랜스젠더 모델 테디 퀀리반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줘서 고맙다”고 했다. 줄리앙 도세나 파코 라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필립 피카르디 아웃 매거진 편집장, 레베카 코빈-머레이 스타일리스트 등도 댓글로 지지를 표명했다. 글이 논란이 되자 제스키에르가 게시물의 댓글 기능을 차단해 현재는 댓글을 볼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간) 텍사스 알바라도에 문을 연 루이비통 생산 공장에 방문했다. 그러면서 해당 공장이 일자리를 창출했다며 자신의 업적을 내세웠다. 그는 “(루이비통이)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근로자 500명을 고용할 것”이라며 “누구도 미국 기술자들의 실력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공장은 미국에 처음으로 지어진 것은 아니지만 미국인에게 고용 기회를 확대한다는 트럼프 정부 정책과 맞닿아있다.
이날 공장 리본 커팅식에는 트럼프의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도 참여했다. 이들은 공장 전반을 둘러보며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과 웃으며 대화하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루이비통 가방 제작 과정에 참관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르노 회장을 “아티스트이자 선지자”라고 추켜세웠다.
WP는 “리본 커팅식은 부조화스러웠다. 여성, 이민자, 성소수자들이 마치 어딘가 갇힌 듯이 느끼게 만드는 대통령과 그들을 상대로 천문학적인 이득을 취하는 억만장자 사이에 중립적 바탕이 형성될 수 있는가”하고 물었다. 공장 직원을 배경으로 아르노 회장을 포옹하며 등을 토닥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을 두고는 “굉장히 기이한 모습”이라고 적었다. 트럼프가 혐오하는 집단을 상대로 장사하는 LVMH 회장이 트럼프와 동의하듯 행동하는 모습을 두고 부조화라고 표현한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LVMH 그룹과 연대하는 퍼포먼스를 보인 것은 대선을 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WP는 “루이비통 리본 커팅식은 재선을 위한 트럼프의 기술”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할 때 이들 캠페인이 자주 활용하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루이비통의 새 공장은 불법 이민자 문제가 쏟아지는 장소인 텍사스에 위치해 있다”고 지적했다. 텍사스는 중남미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트럼프 지지층이 반대하는 불법 이민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미국 CBS뉴스는 “최근 LVMH는 미국에 3개의 공장을 열었다. 2개는 캘리포니아에 그리고 하나는 텍사스에 위치한다”며 “‘MADE IN USA’가 찍힌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는 트럼프 정부가 미국 노동자들에게 했던 약속의 일환이기도 하며 LVMH가 이를 지지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정부와 LVMH가 서로를 지지하고 나서면서 소비자들의 불만도 표출되고 있다. 트럼프 일가와 행정부와 관련된 사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모임인 ‘그랩 유어 월렛(Grab Your Wallet)’은 최근 블랙리스트에 LVMH를 추가했다. 그랩 유어 월렛은 “아르노 회장은 루이비통 텍사스 공장에 방문한 트럼프를 환영했다”며 “LVMH가 해당 행사 개최를 후회하며 트럼프 정부와 미래에 이 같은 이벤트를 또다시 만들지 않겠다고 밝히면 블랙리스트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적었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