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핵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유훈을 받았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이 대외적으로 비핵화가 선대 유훈이었다며 북·미 협상 명분으로 삼아왔던 것과 비교하면 온도차가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대화에 나서지 않은 것을 두고 ‘바보(stupid)’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워싱턴타임스는 작가 더그 위드의 출간 예정작 ‘트럼프의 백악관 안에서(Inside Trump’s White House)’의 요약본을 입수해 그 내용을 22일(현지시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은 위드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보면 그가 트럼프 대통령과 친구가 되고 싶어함을 알 수 있다”면서도 “그의 아버지(김정일 위원장)는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핵이 유일한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3월 우리 정부의 대북 특사단과 만난 자리에서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언이 나온 지 3개월 만인 지난해 6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쿠슈너 고문은 김 위원장에게 핵무기는 “아버지와 관련된 것(It’s a father thing)”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새로운 아버지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은 쉽지 않은 전환”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을 미국 관리들이 ‘인질(hostage)’이라고 부르는 것도 싫어했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데려온 데 이어 지난해 5월 그때까지 북한에 억류돼 있던 한국계 미국인 3명 전원을 귀환토록 했다. 위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그 말(인질)을 쓰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도 대북 외교성과를 과시할 때마다 ‘인질’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직후 오바마 전 대통령을 만나 북한 문제를 논의한 내용도 일부 공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드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해줬다”며 “사실 그는 내게 ‘당신 재임 중에 북한과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나는 오바마에게 ‘대통령 각하, 김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봤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렇지 않다. 그는 독재자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한 마디로 모든 게 설명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대화를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면서 오바마 전 대통령을 ‘바보’라고 혹평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각료회의에서도 유사한 언급을 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11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김 위원장은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팩트체크 기사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