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압박한 미국에 정부 ‘고민’…농민 반발 ‘어쩌나’

입력 2019-10-23 11:30
美, 또 한국 개도국 지위 포기 압박
한국 정부 “이달 중 결정”


미국 정부가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다시 한 번 압박하고 나섰다. 한국처럼 경제가 발전한 국가가 개도국 지위를 누리는 건 WTO 발전·개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우회적으로 포기를 종용했다. 한국 측은 개도국 지위 포기와 관련해 국내 농업계의 민감한 현실을 고려해 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2일(현지시간)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면담을 가졌다. 면담 직후 유 본부장은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WTO 개혁 차원에서 개도국 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 본부장의 이번 미국 방문은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시한이 임박하면서 미국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파악해보기 위한 성격이 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26일 트위터를 통해 “경제적 발전도가 높은 국가가 WTO 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WTO가 90일 내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미국 차원에서 이들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말했었다.

한국은 쌀 부문에 국한해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고율의 관세와 보조금 지급 등의 혜택을 부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경우 농업계가 받던 혜택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농민들의 반발이 큰 상태다. 지난 22일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농업계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파행으로 끝나기도 했다. 유 본부장은 “한국 농업분야 민감성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우리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대로라면 한국 시간으로 오는 24일까지 한국도 개도국 지위 포기 여부를 밝혀야 한다. 한국은 미국이 개도국이 아닌 국가를 분류하기 위해 제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여부 등 4가지 조건에 모두 해당된다.

정부도 이달 중에 포기 선언을 할 태세다. 대외경제장관회의 개최를 통해 공식화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기재부 종합 국정감사 등의 일정을 고려해 오는 25일 이후에나 일정을 잡기로 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지난 21일 기자 간담회에서 이달 중 결정한다고 확언하기도 해다. 산업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법적 구속력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루 이틀 늦고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