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하는 미군을 향해 쿠르드족 주민들은 썩은 감자와 돌을 던졌다. 5년 전 꽃과 박수갈채를 받으며 시리아 북동부에 발을 디뎠던 미군은 21일(현지시간) “꺼져라. 이 배신자들”이라는 원성까지 들으며 이 지역에서 초라히 퇴장했다.
알아안 방송의 중동 전문기자인 제난 무사는 트위터에 “미군 부대가 시리아 북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쿠르드족은 그들을 영웅으로 대접하며 꽃을 선물하고 환호했다”며 “이제 (터키의 공격으로) 겁에 질린 쿠르드족은 떠나는 미군을 향해 토마토와 돌을 던진다”고 썼다. 로이터통신은 “미군 차량 100여대가 시리아 북동부에서 사헬라 검문소를 거쳐 이라크 북부 도후크주로 들어갔다”고 전했다. 미국은 시리아에서 철수시킨 병력을 이라크 등지에 재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군이 떠난 자리의 공백으로 다시 전운이 깃들고 있다. 쿠르드족과 5일간의 조건부 휴전에 합의했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휴전 종료일을 하루 앞두고 쿠르드족과 협상은 없다며 사실상 공세 재개를 공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시리아에 제한된 숫자의 병력을 남겨둘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유전 보호 외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미 쿠르드족을 도왔다. 하지만 그들에게 앞으로 400년 동안 주둔하며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관심은 시리아를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의 갈등이 아닌 시리아 석유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대통령은 IS나 시리아 정부, 러시아, 이란의 수중에 시리아 유전이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약 200명의 미군만 시리아 동부에 주둔시키겠다는 국방부 계획에 찬성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회의에서 “궁극적으로 우리는 병사들을 집으로 데려오고 있다”면서 “소수 병력이 석유를 지키기 위해 요르단과 이스라엘에 인접한 시리아 일부 지역에 머물게 될 것이다. (시리아 북부가 아닌) 완전히 다른 곳”이라고 말했다.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전략을 “떠나라. 하지만 석유는 지켜라”로 정의했다.
단순히 시리아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석유 등 미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 시리아 전략을 대놓고 드러낸 만큼 이는 중동 지역 전체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언뜻 예측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에서 미국의 이익과 직결되지 않는 문제들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만큼은 일관되게 유지돼왔다.
NBC방송은 3명의 전현직 미 국방 당국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군을 지시할 수 있어 국방부가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돌발적으로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결정한 만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같은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군 병사들의 본국 귀환 관련 발언을 부쩍 자주 내놓고 있다. 정계 입문 이래 줄곧 미국에 어떠한 이익도 되지 않는 ‘끝없는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해온 만큼 내년 미 대선에서 이를 업적으로 부각시키겠다는 의도다. 세계 각지에서 미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한동안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