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비서가 필요해”…지방의회 권위주의 회귀에 눈총

입력 2019-10-22 15:12 수정 2019-10-22 17:58

광주지역 광역·기초의회의 제 밥그릇 챙기기에 대한 비난여론이 커지고 있다. 광주시의회와 서구의회가 혈세로 부의장 전담 의전비서를 배치하고 의정동우회 지원조례를 제정하려다가 백지화했다.

22일 광주시의회에 따르면 부의장 2명을 수행할 7급 직원 배치를 철회한다는 공문을 시 집행부에 제출했다.

시의회는 당초 “부의장 2명이 의장을 대신해 회의를 진행하거나 외부 행사에 참석할 경우 수행비서가 필요하다”며 수행비서 2명 충원을 포함한 의회사무처 조직개편을 추진했다.

특별전문위원실 신설과 통신·운전원·비서 등 공무원 7명의 추가 배치를 전제로 한 ‘의회사무처 조직개편’을 시 집행부에 요구한 것이다. 전체 의원들의 의정업무를 지원하는 인력 배치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시는 오는 12월 시의회 사무처를 포함한 조직개편에 들어가는 데 현재 시의회에는 의장 1명에게만 6급 전담비서와 운전원이 배치돼 있다.

하지만 시의회는 부의장 의전을 전담하는 수행비서 요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쏟아지자 의원들과 논의 끝에 이를 거둬들였다.

시민단체 등이 싸늘한 반응과 함께 비난 성명을 내자 수행비서 추가 배치를 철회했다. 시의회가 여론의 뭇매에 백기 투항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의회가 업무시간이 아닌 야간에 관행적으로 의회 직원을 부의장 수행 업무에 동원한 사실이 드러나 ‘갑질’이라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참여자치21은 시의회에 대한 성명을 통해 “시정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어떻게 할 줄도 모르고 능력도 부족하면서 제 밥그릇은 더 크게, 시민혈세로 더 많이 밥 양을 채우겠다는 비루한 권리행사를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수행비서가 탈권위주의적 시대상황에 전혀 맞지 않고 부의장이라는 ‘감투’를 생색내는 데 그친다는 것이다.

서구의회는 전·현직 의원 친목모임 성격의 ‘의정동우회’를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하는 ‘서구 의정동우회 육성 및 지원조례안’ 입법을 추진하다가 반대여론이 거세지자 철회했다.

역대 의원들이 의정활동을 통해 쌓은 경험을 서구민 복지증진 등에 활용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특혜이자 의회폭력이라는 비판에 조례 발의를 취소했다.

지난 3일 강기석 의장 발의로 상임위인 운영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던 조례안은 전·현직 의원으로 구성한 동우회가 지방자치·의정발전을 위한 연구와 사회복지·환경·교통에 관한 연구 등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구청장이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친목 성격이 강한 의정동우회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에 직면해 보조금 지원은 없던 일이 됐다.

서구의회 내부에서도 의견수렴 절차와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서구의회 한 의원은 “의정동우회 사업이 추상적인데다 친목 모임 성격이어서 지자체 예산을 줘서는 안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다”며 “다른 자치구는 해당 조례를 폐지하거나 예산 지원을 중단하는 마당에 서구만 조례를 제정하려는 것은 시대적 추세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2002년 관련 조례를 제정한 광주시의회는 2017년 3월 특혜 논란에 따라 조례를 폐지했다. 남구를 제외한 동구 광산구 북구의회는 해당 조례를 제정하지 않았다.

남구의회는 2013년 이 조례를 제정해 유지하고는 있지만 별도의 예산 지원은 하지 않고 있다.

민중당 광주시당은 이와 관련한 성명을 내고 “더불어민주당이 독점한 지방의회가 도덕 불감증에 빠져 있다”며 “해당 조례를 제정할 경우 주민과 함께 항의 규탄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구의회는 의정동우회 지원조례 철회요구서에 “비슷한 조례를 제정, 시행 중인 다른 자치단체에서는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면밀한 검토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2004년과 2012년 2차례에 걸쳐 “의정동우회 설치와 지원에 관한 조례는 상위법인 지방재정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방의원들이 무슨 생각으로 의정활동을 하는지 답답하고 개탄스럽다”며 “3년 가까이 남은 임기동안 지방의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