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더불어민주당은 28차례의 박수로 화답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야유를 퍼부었다. 한국당은 검찰개혁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손으로 ‘엑스(X)자’를 그리며 집단 항의하기도 했다. 규탄 현수막까지 등장했던 지난해 시정연설 때보다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됐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검찰개혁 등을 두고 갈등을 빚어온 여야 간 냉랭한 분위기가 시정연설 내내 고스란히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22일 오전 10시쯤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기립 박수로 문 대통령을 맞았지만, 한국당 의원들은 자리에 서서 문 대통령의 입장을 바라보기만 했다.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33분간 진행됐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국산화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자, 민주당에서 첫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 확장적 예산의 중요성, 고교무상교육제도 등을 언급할 때도 민주당 의원들은 박수를 보냈다.
반면 한국당 의원들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은 대부분 박수를 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 재정과 경제력은 더 많은 국민이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충분할 정도로 성장했고 매우 건전하다”고 하자 한국당이 처음으로 술렁였다.
그러다 문 대통령이 일자리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고용지표 등을 제시하자 “에이~”라며 노골적인 야유가 터져 나왔다.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연설로 넘어가서도 야유는 계속됐다. 문 대통령이 “핵과 미사일 위협이 전쟁의 불안으로 증폭되던 불과 2년 전에 비하면 우리가 가야할 길은 명백하다”고 말하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한국당 반발은 문 대통령이 ‘공정’의 가치를 말하면서 더욱 고조됐다. “‘공정’과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는 문 대통령 발언에 한국당 의석 쪽에서는 “사과하세요!” “조국 조국!” 등 고성이 나왔다.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통과를 위한 국회의 노력을 당부할 때 한국당의 야유가 극에 달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공수처’란 단어가 나오자마자 손으로 ‘엑스(X)자’를 그리며 항의했다. 줄곧 굳은 표정으로 문 대통령의 연설을 경청하던 나 원내대표도 검찰개혁 관련 연설에서는 손으로 엑스자를 그리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
또 민생 관련 법안 처리에도 힘써달라는 주문이 이어지자 일부 한국당 의원들은 “야당하고 협의를 해야지” “협치를 하세요”라며 문 대통령을 향해 소리쳤다. 시정연설 마무리쯤 “정치는 항상 국민을 두려워한다고 믿는다”고 문 대통령이 말하자 한 한국당 의원이 “거짓말하지 마세요”라고 소리쳤다.
시정연설을 마치자마자 한국당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본회의장을 떠났다. 문 대통령은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한국당 의원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나 원내대표와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 강석호·김성태·김세연·김현아·민경욱·이주영·홍문표 의원 등은 웃으며 악수에 응했다. 일부 의원들은 문 대통령 악수를 애써 외면하며 등을 돌렸다.
시정연설에 앞서 진행된 사전환담회에서는 여야 5당 대표가 한자리에 앉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황교안 한국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황 대표가 조 전 장관 사퇴와 관련해 “조국 장관 관련해서는 잘해주셨다. 다만 국민의 마음이 분노하고 화가난 것 같다”며 “대통령이 직접 국민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소속인 이주영 국회부의장도 “평소 야당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들어주시면 대통령 면이 올라간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대답없이 미소만 지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