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군용기, ‘한·러軍직통전화’ 논의 하루 앞두고 카디즈 무단진입

입력 2019-10-22 14:59 수정 2019-10-22 15:38
막심 볼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대리가 지난 7월 2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 들어가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주한 러시아대사관의 니콜라이 마르첸코(왼쪽) 공군 무관과 세르게이 발라지기토프 해군 무관이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에 들어서는 장면. 당시 외교부와 국방부는 이들을 불러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에 대해 엄중히 항의했다. 윤성호 기자, 연합뉴스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한 지 91일 만에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진입했다. 한·러 공군 간 직통전화 개설을 논의하기 위한 한·러 합동군사위원회의를 하루 앞두고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무단진입이 이뤄진 것이다. 러시아가 KADIZ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러시아 군용기로 추정되는 항공기가 22일 오전 동해 KADIZ에 진입했다. 이 항공기는 상당 시간 KADIZ에 머무른 것으로 전해졌다. 군 소식통은 “KADIZ에 무단진입한 러시아 항공기는 1대 이상으로 식별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F-15K 등 한국 공군 전투기가 긴급 출격해 대응 비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군이 의도적으로 이날 KADIZ 무단진입을 실시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합참은 지난 8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주변국 항공기의 KADIZ 침범 방지를 위해 군사외교적 노력을 강화 중”이라며 “러시아와 비행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MOU는 한·러 공군 간 직통전화를 설치하기 위한 것으로, KADIZ 무단진입이나 영공 침범을 막기 위해 추진된 방안이었다.

MOU 체결 시점과 형식에 대해 협의를 하기로 한 한·러 합동군사위원회는 23일 열릴 예정이다.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양국 군 당국 간 회의 전날 러시아 군용기가 KADIZ에 무단진입한 것이다. 당초 한·러 합동군사위원회는 22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러시아 측 사정으로 하루 늦춰졌다. 합참은 MOU 체결에 필요한 러시아 측과의 문안 협의를 지난해 11월 16일 완료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합동군사위원회에 참석하는 러시아 당국자들이 22일 도착한 뒤 23일 회의를 열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A-50) 1대는 지난 7월 23일 한반도 인근에서 중국 군용기들과 ‘연합 공중전략 순항훈련’을 실시하던 중 독도 영공을 두 차례 침범했다. 당시 한국 공군 전투기들이 출격해 플레어(섬광탄)을 25발 투하하고, 20㎜ 기총 360여발을 경고사격 한 바 있다.


방공식별구역은 각국이 자국 영공에 접근하는 항공기를 사전에 식별하고 우발 충돌을 막기 위해 임의로 설정해놓은 구역이다. 국제법상 주권이 미치는 영공이 아니어서 관할 군 당국에 사전통보한 뒤 진입하는 게 관례로 돼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 군용기들은 KADIZ 무단진입을 거듭하고 있다. 군 당국은 앞으로도 러시아와 중국 군용기의 KADIZ 무단진입뿐 아니라 한반도 인근에서 중·러 해상·공중 연합훈련이 계속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전날 중국 연합참모부 샤오위안밍 부참모장(중장)과 제5차 한·중 국방전략대화를 갖고 해·공군 간 직통전화 추가설치 등에 대한 MOU 개정을 위해 노력키로 했다. 한·중 국방전략대화는 사드(THAAD) 배치 여파로 5년간 중단됐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