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부의 적과 맞닥뜨렸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동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국무부 관리들은 상부의 만류를 무릅쓰고 민주당 주도의 탄핵 조사에 적극 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실책을 저지르면서 공화당에서도 이반 조짐이 보인다. 이 와중에 탄핵 정국을 관리해야 할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마저 잇따른 말실수로 위기를 자초하는 모양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0일(현지시간) ‘국무부의 복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무부 직원들은 그동안 ‘그림자 정부(deep state)’라고 조롱받고 ‘오바마 잔당’이라는 비난도 들었다. 막대한 규모의 예산 감축을 하겠다는 위협도 받아야 했다”며 “이제 미국 외교관들이 복수에 나서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국무부 직원들은 민주당의 청문회 소환에 비교적 성실하게 응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직원들에게 청문회 증언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이를 대놓고 어기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마이클 매킨리 전 국무부 수석보좌관은 청문회 출석을 위해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필립 리커 국무부 차관보 대행과 조지 켄트 부차관보, 빌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대리대사 등 인사들은 현직을 유지한 채 의회 증언을 했다.
이 외교관들은 의회에서 자신들이 대(對)우크라이나 외교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취지의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정무직 인사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것이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의 비리 의혹을 수사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국무부 직원들의 잇따른 폭로로 트럼프 대통령은 더욱 궁지로 몰리는 형국이다.
국무부 직원들이 ‘반기’를 든 건 트럼프 행정부에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폭발한 측면도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직후 국무부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은 국무부를 ‘민주당 소굴’이라며 마뜩찮게 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부 내부에는 청문회에 출석한 직원들을 영웅시하는 분위기도 존재한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로라 케네디 전 국무부 군축대사는 “직원들은 이미 신물이 나 있다”며 “깊게 쌓였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멀베이니 대행의 말실수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멀베이니 대행은 지난 17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서버 관련 의혹을 내게 언급했냐? 그렇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이 때문에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를 보류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 진영은 ‘러시아 스캔들’을 모면하기 위해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가 대선에 개입했으며 그 증거가 DNC 서버에 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멀베이니 대행의 이날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대가로 민주당을 수사하도록 우크라이나 정부를 압박했음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됐다.
멀베이니 대행은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멀베이니 대행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크리스 월레스 앵커는 “공화당이 트럼프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질 확률은 20%라고 공화당 의원들과 잘 아는 인사가 전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