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케도니아가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해 나라 이름까지 바꿨지만 좌절됐다. 핵심 국정 과제로 EU 가입을 추진해온 조란 자에브 북마케도니아 총리는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기 위한 조기 선거 카드를 빼 들었다.
19일(현지시간) 가디어 등 유럽 언론에 따르면 지난 17~18일 이틀간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북마케도니아, 알바니아 등 발칸반도 국가들의 EU 신규 가입 이슈가 논의됐다. 하지만 프랑스의 반대로 가입 협상 개시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자에브 총리는 이날 TV 담화를 통해 “우리는 EU가 저지른 역사적 실수의 희생자”라며 “우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 국민이 선택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개최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자에브 총리는 국민적 분노와 실망감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국민의 지지를 얻으면 다시한번 EU 가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SDSM) 소속인 자에브 총리는 2017년 취임 이후 EU 가입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리고 EU 가입에 필수적인 그리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지난 2월 국민투표를 통해 국호를 ‘마케도니아’에서 ‘북마케도니아’로 변경하는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다.
북마케도니아는 지난 1991년 옛 유고 연방에서 독립한 이래 마케도니아라는 국명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라는 명칭이 알렉산더 대왕의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 중심지였던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에서 나왔다며 국호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아가 EU 가입도 매번 좌절시켰다.
이에 자에브 총리는 지난해 6월 알렉시스 치프라스 당시 그리스 총리와의 회담에서 국명을 마케도니아에서 북마케도니아로 바꾸는 대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및 EU 가입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아낸 바 있다. 당시 국호 변경 성사에는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설득도 작용했다. EU 측은 국호 문제가 해결되면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도 했다. 국호 변경이 사실상 EU로의 초대장으로 인식됐다. EU 역시 구 공산권인 발칸반도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영향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북마케도니아의 가입을 이 지역에 대한 지렛대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북마케도니아의 EU 가입을 위한 협상이 프랑스의 반대로 시작조차 못하게 됐다. EU 정상회의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북마케도니아 등의 EU 가입 이슈와 관련해 “EU는 새 회원국을 받아들이기 전에 이민과 예산 문제 등에서 필요한 개혁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EU는 예상하지 못한 프랑스의 반대로 협상 자체가 시작되지 못하자 당황하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북마케도니나와 알바니아의 EU 가입 협상 개시에 합의하지 못한 것은 ‘실수’”라면서 “두 국가 모두 EU 회원국이 되기 위한 기준을 통과했다”고 지적했다. 또 EU 행정부 수반 격인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도 “역사적인 실수”라면서 “이것이 일시적인 것이길 바란다”고 평가했다.
EU 새 회원국 가입 논의는 내년 봄까지 잠정 중단될 것으로 전망된다. EU 정상회의가 내년 5월 서발칸-EU 정상회의를 앞두고 북마케도니아의 EU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마케도니아 조기선거에서 정권이 교체될 경우 EU 가입 추진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미지수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