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리, 두 번 찾아오지 않은 ‘18번 홀의 기적’

입력 2019-10-20 16:38 수정 2019-10-21 18:28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가 20일 제주도 서귀포 클럽 나인브릿지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더 CJ컵 최종 4라운드 18번 홀(파5)에서 역전의 마지막 기회인 이글 퍼트를 놓치고 아쉬워하고 있다. JNA골프 제공

제주도 서귀포 클럽 나인브릿지(파72·7241야드)의 시그니처 홀인 마지막 18번 홀(파5). 챔피언 조의 3명이 모두 투온에 성공하고 마지막 핀을 향해 걸었다. 기준타수까지 앞으로 3타. 단독 2위인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한국명 이진명·29)는 리더보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저스틴 토머스(26·미국)를 2타 차이로 추격하고 있었다. 비록 낮은 가능성이지만, 이글 퍼트 하나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거나 역전이 가능했다.

이 홀은 이글이 쏟아진 ‘희망의 홀’이다. 기권한 2명을 제외하고 마지막까지 완주한 출전자 76명 중 10명이 이날 18번 홀에서 이글을 잡았다. 대니 리도 이 홀에서 기분 좋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 바로 하루 전 3라운드 18번 홀에서 20m짜리 이글 퍼트를 낚아 공동 선두로 치고 올랐다. 하지만 같은 행운은 두 번 찾아오지 않았다. 대니 리의 퍼트는 홀컵을 스쳤지만 빨려 들어가지 않고 지나갔다.

그 순간 대니 리와 토머스의 표정이 엇갈렸다. 토머스는 가슴을 쓸어내린 듯 한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니 리는 공을 바로 앞 홀컵으로 밀어 넣고 버디로 끝냈다. 토머스의 세 번째 타는 홀컵 1m 앞에 있었다. 토머스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연습을 반복하며 마지막 타를 준비했고, 가볍게 공을 밀어 친 버디 퍼트로 우승을 확정했다.

저스틴 토머스가 20일 제주도 서귀포 클럽 나인브릿지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더 CJ컵을 정복한 뒤 이 골프장의 시그니처 홀인 18번 홀 앞에서 트로피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JNA골프 제공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더 CJ컵의 초대 챔피언 토머스가 2년 만에 왕좌를 탈환했다. 토머스는 20일 클럽 나인브릿지에서 열린 더 CJ컵 최종 4라운드에서 5언더파 67타를 적어냈다. 최종 합계는 20언더파 268타. 준우승한 대니 리의 최종 합계는 2타 차이로 밀린 18언더파 270타였다. 토머스는 우승 상금 175만5000달러(약 20억7000만원)와 자신의 한글명이 금색으로 새겨진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토머스는 2017년 더 CJ컵 원년에 우승한 뒤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회 연속으로 출전했다. 변덕이 심한 제주도의 바람은 꾸준하게 출전한 토머스의 손을 들어줬다. 토머스는 이번에 달성한 PGA 투어 통산 11승 중 2승을 더 CJ컵에서 수확했다. 그는 이 대회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절친한 조던 스피스(미국)에게 추천해 올해 대회 출전을 이끌어냈을 정도다.

토머스는 경기를 마친 뒤 클럽 나인브릿지 미디어 센터 기자회견장에서 대니 리의 이글 퍼트가 홀컵으로 들어갈 뻔했던 마지막 18번 홀의 아찔한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대니 리의 퍼트 감각이 이번 대회 내내 좋았다. 그의 이글 퍼트가 홀컵으로 들어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들어가지 않아 안도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대니 리는 출산 예정일보다 두 달이나 빠르게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있는 둘째에게 바치려 했던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지 못했지만, 모국인 한국에서 갤러리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올 시즌 최고 성적으로 이번 대회를 마무리했다.

토머스의 추천으로 처음 출전한 스피스는 최종 합계 12언더파 276타를 기록해 공동 8위로 선전했다. PGA 투어 첫승을 노렸던 지난 시즌 신인왕 임성재는 최종 합계 5언더파 283타를 적어내고 공동 39위에서 완주했다. 2연패를 노렸던 세계 랭킹 1위 브룩스 켑카(미국)는 2라운드에서 미끄러져 재발한 왼쪽 무릎 통증으로 3라운드 시작을 앞두고 기권했다.

저스틴 토머스가 20일 제주도 서귀포 클럽 나인브릿지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더 CJ컵 최종 4라운드에서 갤러리의 박수를 받으며 18번 홀로 이동하고 있다. JNA골프 제공

PGA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 더 CJ컵은 올해에도 최다 관중 수를 경신했다. 더 CJ컵 조직위원회는 클럽 나인브릿지 미디어 센터에서 “나흘간 4만6314명의 갤러리가 방문했다”고 밝혔다. 이 대회의 갤러리 수는 원년인 2017년에 3만5000명, 지난해에 4만1000명으로 각각 집계됐다. 마지막 4라운드에만 1만9294명이 몰린 클럽 나인브릿지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격전지인 클럽 나인브릿지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여러 코스를 경험하며 투어 통산 44승을 누적한 베테랑 필 미켈슨(미국)은 클럽 나인브릿지를 메이저대회 마스터스의 개최지인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제 더 CJ컵의 마지막 퍼즐’은 타이거 우즈(미국)와 로리 맥길로이(북아일랜드)다. CJ는 차기 대회까지 앞으로 1년간 두 선수 영입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김유상 CJ 스포츠마케팅 부장은 “우즈와 맥길로이가 올해 후원사 계약 이행의 문제로 조조 챔피언십에 출전하면서 CJ컵에 출전하지 못했다”며 “정상급 선수들을 초청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선수가 우즈와 맥길로이”라고 말했다.

서귀포=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