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리가 어렵게 이야기 꺼낸 아내, 그리고 둘째

입력 2019-10-19 16:55 수정 2019-10-19 17:00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가 19일 제주도 서귀포 클럽 나인브릿지에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더 CJ컵 3라운드를 공동 선두로 마친 뒤 기자회견장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JNA골프 제공

“이 이야기는 끝날 때까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더 CJ컵 3라운드가 끝난 19일 제주도 서귀포 클럽 나인브릿지 미디어 센터 기자회견장. 공동 선두로 라운딩을 끝내고 단상에 오른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한국명 이진명·29)는 목이 잠긴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우승할 경우 아내에게 펼칠 세리머니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였다.

대니 리는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아내가 둘째 임신했었는데… 저번 주… 저번 주 일요일에 조산이라고 해야 할지…. 원래 크리스마스(12월 25일)쯤 나와야 하는데….” 대니 리는 잠긴 목소리를 애써 헛기침으로 가다듬었다.

어딘가 순박한 듯하면서도 재치가 있는 대니 리의 언변에 한때 웃음이 터지기도 했던 기자회견장에서 숙연한 정적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더 이야기를 못하겠습니다.” 기자회견은 화제가 전환된 최종 4라운드 경기 계획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대니 리는 이날 클럽 나인브릿지(파72·7241야드)에서 계속된 PGA 투어 더 CJ컵 3라운드에서 중간 합계 15언더파 201타를 기록해 저스틴 토머스(미국)와 공동 선두로 치고 올랐다. 10번 홀(파4)에서 더블보기를 범했지만,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홀컵까지 약 20m 거리에서 극적으로 낚은 이글 퍼트로 실타를 만회했다. 버디 4개를 포함해 이날 4언더파 68타를 적어냈다.

따뜻한 미소를 품은 대니 리의 표정은 기자회견을 끝낼 때 깊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마저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뒤로하고 기자회견장을 떠나면서 다소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니 리는 이제 아내와 자신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다독일 마지막 퍼트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19일 오전 9시45분 클럽 나인브릿지 1번 홀에서 더 CJ컵 최종 4라운드를 티오프한다. 대니 리는 2015년 그린버라이어 클래식 우승 이후 4년 만에 PGA 투어 통산 2승을 조준하고 있다.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가 19일 제주도 서귀포 클럽 나인브릿지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더 CJ컵 3라운드 5번홀에서 티샷한 뒤 궤적을 바라보고 있다. JNA골프 제공

대니 리 3라운드 기자회견

-3라운드를 마친 소감은?

“쉽지 않은 라운드였다. 1~2라운드보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열심히 쳤다.”

-저스틴 토머스, 안병훈과 같은 조에서 경기했다. 어땠는가.

“재밌었다. 토머스와 많이 치지 못해 어떻게 경기하는지 몰랐다. 오늘 재미있게 쳤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이글을 잡았다. 어떤 기분이 들었는가.

“(18번 홀 이글) 퍼트는…. 바로 집어넣으려고 친 것은 아니었다(웃음). 공이 자꾸 홀 쪽으로 빨려 들어가 이글이 됐다. (보폭을 기준으로) 19걸음의 거리였다.”

-뉴질랜드 교포다. 한국에서 우승한다면 남다른 의미를 갖지 않겠는가.

“의미가 크다. 아내도 한국인이고 부모도 한국인이고 할아버지도 한국에 있다. 많은 가족이 한국에 있다. 가족 앞에서, 한국 팬들에게도 좋은 모습을 자주 보여 주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다. 이번 주에 내 실력을 많이 보여 줄 수 있어 기쁘다. 우승하고 일어나는 일들은 내일 경기를 끝내고 다시 말하겠다.”

-허리 통증으로 한동안 고생했다. 그 전보다 비거리가 늘어났는가.

“다시는 같은 부상을 당하고 싶지 않아 좋은 트레이너(와 함께), 열심히 운동했다. 운동한 지 1년이 다 됐다. 헬스를 정말 싫어하는데, 좋은 골프선수가 되고 싶어 헬스장을 자주 가는 편이다.”

-우승하면 아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나 세리머니가 있는가.

“이 이야기는 끝날 때까지 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때 대니 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내가 둘째 임신했었는데…. 지난 주, 지난 주 일요일에 조산이라고 해야 할지, 원래 크리스마스(12월 25일)쯤 나와야 하는데…. (대니 리가 목 잠긴 소리를 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기는…. 죄송합니다. 이야기를 못하겠습니다.”

-4라운드에서 어떻게 경기할 계획인가.

“아무리 (원하는 거리와 방향을) 생각해도, 골프공이 그렇게(원하는 대로) 되면 많이 우승했을 것이다. 내일 아침에 컨디션을 보고 경기 계획을 결정하겠다.”

서귀포=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