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골프 세계 랭킹 1위 브룩스 켑카(29·미국)는 예절부터 달랐다. 한국에서 ‘노쇼’ 사태를 빚은 이탈리아 프로축구 유벤투스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포르투갈)와 다르게 방한 대회를 기권한 뒤 팬 사인회를 열어 아쉬워하는 갤러리의 마음을 달랬다.
켑카는 19일 낮 12시15분쯤 제주도 서귀포 클럽 나인브릿지(파72·7241야드) 갤러리 플라자 이벤트 홀에서 팬 사인회를 열고 갤러리들을 만났다. 이 코스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더 CJ컵에 출전했지만 전날 2라운드를 마치고 왼쪽 무릎에 이상을 느껴 이날 3라운드부터 기권했다. 켑카는 지난달 왼쪽 무릎에 줄기세포 주입 시술을 받았다.
켑카는 앞서 2라운드까지 이븐파 144타를 기록, 출전 선수 78명 중 공동 51위로 부진했다. 그는 이 대회의 디펜딩 챔피언이다. 지난 4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서멀린 TPC에서 개막한 PGA 투어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에서 2019-2020시즌을 출발했지만 컷 탈락했다. 시즌 두 번째로 출전한 더 CJ컵도 완주하지 못했다. 시즌 초반 부진은 계속되고 있다.
비록 경기를 포기했지만 갤러리를 외면하지 않았다. 켑카가 갤러리 플라자 야외에 있는 이벤트 홀 탁자에 앉자 주변에서 식사하던 갤러리는 곧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비구름이 짙었던 전날과 다르게 이날 클럽 나인브릿지의 하늘에서 강한 볕이 내렸지만, 켑카는 20여분간 갤러리의 모자, 티셔츠, 종이에 서명하며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지난 7월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팀 K리그와 가진 친선경기에 ‘최소 45분 출전’ 약속을 깨고 결장한 호날두와 다른 태도였다. 유벤투스는 당시 지각으로 경기를 57분이나 지연했고, 호날두는 같은 날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에서 열릴 예정이던 팬 미팅을 일방적으로 불참했다.
호날두의 ‘노쇼’ 사유는 완전하지 못한 몸 상태였다. 하지만 같은 달 27일 인스타그램에 가벼운 몸놀림으로 러닝머신을 뛰는 영상을 올리고 ‘집에 돌아와 좋다’는 자막을 썼다. 그러면서도 한국 팬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넉 달 가까이 한국 축구팬을 외면하고 있는 호날두와 다르게 켑카는 국내 유일의 PGA 투어 대회인 더 CJ컵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한국 갤러리들과 직접 소통했다.
켑카는 PGA 투어를 통해 “2라운드에서 젖은 바닥에 미끄러졌다. 왼쪽 무릎에서 다시 통증을 느꼈다. 주치의와 상의한 결과, 더 CJ컵을 기권하고 검진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며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지원에 감사하다.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타이틀을 방어하고 싶었지만 부상으로 계속 경기할 수 없어 유감스럽다. 제주에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켑카는 팬 사인회를 마치고 곧바로 제주공항으로 이동해 출국했다. 행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의사의 권유에 따라 미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PGA 투어 관계자는 “집(home)으로 돌아가 정밀 진단을 받으라는 켑카 주치의의 소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오는 31일 중국 상하이에서 개막하는 월드골프챔피언십(WGC) HSBC 챔피언십에서 켑카의 출전은 불투명해졌다.
서귀포=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