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가 쿠르드민병대(YPG) 철수를 조건으로 5일간 쿠르드족을 향한 군사공격을 중지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놀라운 성과’라고 자찬했다. 하지만 미군 철수 조치로 사실상 터키가 쿠르드족을 공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뒤, 뒤늦게 중재에 나서 인명피해를 야기했고 터키 측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와 쿠르드족을 ‘두 아이’에 비유하며 화해시키기 위해 싸움을 시켰다는 취지의 말을 해 도마에 올랐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대표로 한 미국 고위급 대표단은 17일(현지시간) 터키 앙카라의 대통령궁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만나 터키가 시리아에서 쿠르드족 공격을 5일간 중단하는 ‘조건부 휴전’에 합의했다.
휴전 조건은 터키가 설정한 ‘안전지대’ 밖으로 YPG가 자진 철수하고, 미국은 터키에 대한 경제 제재를 전면적으로 중단하는 것이다. 터키군은 시리아에 잔류하고 안전지대를 관리하기로 했다. 안전지대는 터키가 자국과 인접한 시리아 국경을 따라 일방적으로 지정한 길이 480㎞, 폭 30㎞의 구간이다. 터키는 이곳에 주택 20만채를 짓고 자국 내 시리아 난민 100만여명을 이주시키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에 대단한 날이고, 터키에 대단한 날이며, 쿠르드에 대단한 날이고, 전 세계에 대단한 날”이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그는 “터키 (경제) 제재는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이라며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단한 지도자로 옳은 일을 했으며 대단히 존경한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리가 인류의 최대 적인 테러리즘을 물리치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상 터키의 요구를 다 들어준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이번 합의는 제재 철회, ‘YPG 없는 안전지대 지지’ 등 터키가 원하는 것을 줬다”고 평가했다. 터키군의 안전지대 관리는 터키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며 경제제재까지 해제했기 때문이다.
여당 내의 비판과 우려도 나왔다. 공화당 소속 밋 롬니 상원의원은 “(이번 합의는) 승리와는 거리가 멀다”며 향후 미 행정부가 쿠르드족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은 무엇인지, 터키가 왜 명백한 결과에 직면하지 않는지 등을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미국과 터키가 최종 협정을 체결하기 전까지 터키에 대한 압박을 지속할 수 있길 바란다며 자신이 발의한 터키 제재안 지지를 얻어내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와 쿠르드족을 가리켜 ‘두 아이’에 빗대고 양측이 싸우도록 미군철수를 한 것이 오히려 갈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억지주장을 해 도마에 올랐다. 그는 이날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가진 대선 유세에서 “마치 운동장에 있는 두 아이처럼 누군가는 그들이 싸우도록 했다가 그들을 갈라놓아야 한다”며 “그들은 며칠 동안 아주 맹렬하게 싸웠다”고 말했다.
곧바로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IS 격퇴’ 담당 특사를 지낸 브렛 맥거크는 ‘터무니없고 무식한 비유’라고 혹평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그는 “20만 명의 무고한 난민이 발생하고 수백 명이 죽었으며, IS 포로들이 탈옥했다. 운동장의 두 아이들?”이라며 “터무니없고 무식한 비유”라고 말했다.
쿠르드족은 ‘세계 최대 소수민족’으로 불리며 이란과 이라크, 터키, 시리아의 접경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한 번도 독립 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분리 독립과 자치권 확대를 요구해오며 각 소속 국가로부터 핍박을 받아왔다. 시리아 쿠르드족은 바샤르 아사드 정부의 탄압을 받았는데 2011년 ‘아랍의 봄’ 시작된 내전 이후 시리아 영토 30%인 북동부 지역을 통제해왔다. 여기에는 당시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IS 격퇴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주효했다. 하지만 최근 완충 역할을 한 미군이 철군하면서 터키가 국경지대의 쿠르드족을 축출하기 위해 공격에 나서면서 국제사회의 우려를 샀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