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설리의 죽음이 원망스럽다

입력 2019-10-18 14:11

설리의 죽음이 원망스럽다
조성돈(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대표

설리의 죽음은 충격적이다. 때론 사회적 상식에 도전하며 깜찍한 도발을 일삼았던 그였기에 정신적으로 강할 거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감당했기에 또 다른 도전에 나서는 거라고 봤다. 그런데 오해였다. 다시 고쳐 생각하지만 자살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자살하는 사람은 특정해 정해질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설리의 죽음 이후 많은 걱정이 앞선다. 모방자살. 소위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베르테르 효과란 개념이 부각된 건 2005년 배우 고 이은주의 죽음 이후다. 그가 죽은 이후 수백 명이 모방자살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은주가 가지고 있었던 분위기가 있었다. 조금은 우울했던 그의 이미지는 그만의 팬 층을 만들었다. 그녀에게 자신을 동일시 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거다. 결국 그의 죽음은 모방자살로 이어졌고 이는 비극이 한 장면으로 남았다.

설리의 죽음을 뉴스로 접하고 문득 이은주가 생각났다. 설리 역시 특별한 팬 층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과감하게 돌을 던진 그녀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쾌감을 맛보게 해 줬고 그로 인해 악플에 시달릴 때는 동정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으로 인한 후폭풍이 무서운 거다.

하나 더 나아가면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연예인들로 시선을 옮겨볼 수 있다. 비슷한 분위기,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그와 가까웠던 것 같다. 그들이 드러내는 SNS의 글들을 보면 감정이 격하게 이입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느 연예인들의 죽음과는 다른 상황이 보인다. 아마 그들은 유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이 죽음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자살유가족들은 극단적 선택을 할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8배 정도 높다고 한다.

2018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수는 전년 대비 1200명 정도가 늘었다. 2011년 이후 자살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었던 상황을 보면 이렇게 많이 증가한 것이 놀라웠다. 이를 분석하며 보건복지부는 모방자살을 주요원인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노회찬 의원의 죽음이나 미투 사건 이후 이어졌던 연예인들이 죽음이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러기에 올해 이어지는 연예인들의 극단적 선택이 더 우려스럽다.

한 사람의 극단적 선택은 그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남은 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보통 한 사람이 자살을 하면 6~10명 정도의 유가족을 남긴다고 한다. 그런데 직계 가족만으로 생각하지 않고 친구나 가까웠던 사람들을 함께 보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특히 관계를 중요시 하는 한국의 경우는 그 범위가 훨씬 더 넓어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유전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살이 가정 공동체 안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만 보면 자살은 그런 유전적 요인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한 가족이라면 대개 비슷한 생활환경과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 즉 그 가족 모두가 자살에 취약한 상황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한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 이것이 ‘방아쇠 작용’을 일으킨다. 가족의 자살이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다른 가족들에게 충격을 주면서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모방자살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보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동일시 현상’을 경험한다. 마치 그를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심지어 그를 자신으로 여기기까지 한다. 그래서 그들의 죽음을 객관화하기 힘들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에서 끝날 수 있지만 연약한 사람들은 슬픈 감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유가족에게 나타나듯 유명인의 죽음이 방아쇠 작용을 일으킨다. 또한 때로 그들은 누군가에게 영웅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완벽했고 훌륭했다. 그런 그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버티고 살아야 할 용기를 잃는다.

유명인이 된다는 것은 그만한 책임도 짊어진다는 약속이다. 어떻게 대가가 없는 상급이 있겠는가. 그 누구도 이런 모방자살로 인한 죽음이 이어질 거라 생각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 그렇기에 설리의 죽음이 안타까우면서 원망스럽다.

생명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절대적 가치’다. 시대가 혼돈스러우니 우리는 자주 생명을 ‘상대적 가치’로 내려놓는다. 그리고 우리 삶의 주권을 하나님에게서 가져오고 말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너질 때 모든 것이 포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를 붙잡으시는 주권자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