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살해 후 자살’ 피해 올해만 25명…“이 참혹한 비극에 국가가 답할 차례”

입력 2019-10-18 04:05

아동은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발달을 위해 안정된 가정환경에서 행복하게 자라나야 한다(아동복지법 2조 2항). 국민일보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비극적 범죄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다. 보호받아야 할 아동이 범죄의 피해자였다. 국가가 이들 위기의 아동을 구해내기 위해 어떤 조치를 해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법은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하는 등 양육하기에 적당하지 않거나 양육 능력이 없는 아동을 보호대상아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시설을 통해 지원하거나 해당 보호자의 친권 제한 및 상실 조치도 취하도록 했다. 학대에는 아동의 복지를 해치는 행위와 보호자의 유기·방임 행위가 모두 포함된다. 법은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면서 자녀를 먼저 살해하려는 행위를 국가가 막아야 할 일이라고 이미 규정하고 있었다.

지난 15일 두 명의 아이가 또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부모 손에 살해당했다. 올해 25명(17일 기준), 이달들어 2주 동안 8명의 미성년 피해자가 죽었지만 정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국민일보가 7회에 걸쳐 보도한 ‘살해 후 자살’ 시리즈는 공식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은 비극의 실체에 다가서기 위한 시도였다. 현실 문제를 자신의 죽음으로 해결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자녀까지 살해한 부모들은 명백한 범죄 가해자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한 또 다른 가해자도 있었다. 이들을 제도 안에서 지켜내지 못한 사회, 그리고 구조신호에 무신경했던 국가 역시 아이들 죽음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일보는 17일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자살예방·아동보호·심리부검 기관장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들은 국가가 위기 가정의 아이들을 구출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를 위한 개입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문가 제언

①정익중 한국아동복지학회장(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계속발생하고 있는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살 고위험군 가정에 대한 적극 개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왜 반복되나

“한국 사회에 안전망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왜 부모가 그런 선택을 했을까. 아마도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누군가와 상의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누군가 부모에게 안부만 물었어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사전 예방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에서 끝나지 말고 심리적 부검 등 다양한 방식의 조사를 통해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지금은 대부분 자살 사건으로 수사가 종료되면 거기서 분석이 끝나고 만다. 이미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가정에서 참극이 벌어졌다면 국가의 직무유기다”

-국가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나

“아이는 부모와 국가가 함께 길러야 한다. 부모가 제 역할을 다 할 수 없다면 국가가 개입하는 게 맞다. 위험군 가정에 대해서는 주기적인 전화나 방문 확인이 필요하다. 방문을 거부하더라도 설득해야 한다. 국가가 개입해서 아이의 얼굴도 한번 보고, 집안 상태도 보고, 부모랑 얘기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실제 살해 후 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친 경우에는 아이를 부모로부터 강제적으로 분리할 필요도 있다”

-고위험군은 어떻게 파악할 수 있나

“정부는 이미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고위험군의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영유아들의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예방주사가 대표적이다. 부모가 정해진 일정을 걸렀다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고위험군 가정일 확률이 크다. 현재 한해 출생아 수가 30만명 정도로 떨어졌다. 이 정도면 모든 가정을 방문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출산 직후 1년 동안에는 방문이 이뤄줘야 한다. 부모 교육과 가정 모니터링이 동시에 이뤄질 필요가 있다”

-위기 가정에 당장 필요한 조치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부모 스스로 해결하려는 게 문제다. 대개의 위기 가정 부모들은 적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모른다. 제일 간단한 방법은 보건복지상담센터(국번 없이 129)로 전화해서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다. 더 이상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실제로 상담을 받아보면 다른 방법들이 분명히 있다. 부모들이 도움을 요청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가 먼저 나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


②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관장은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극단적 형태의 아동학대라고 지적했다. 살해 후 자살 위협에서 살아남은 아이의 경우 안전하게 자라고 있는지 기관이 추적 관찰하는 사후관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살해 미수 피해 아동 보호 과정은

“살해 후 자살을 포함한 아동학대의 모든 판단은 법원에서 한다. 학대범죄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우리 기관이 아동 보호 조치 집행을 맡는다. 우선 아이를 가해 부모와 분리시키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일에 최우선을 둔다. 이후 상담과 치료 과정을 거치는데, 부모가 살아남았고 아이들이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원가정 복귀를 할지 아이에게 물어본다. 만약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설에 남는 경우 18세까지 지낼 수 있다. 전문가정위탁제도도 이용할 수 있다”

-아이는 어떤 후유증을 호소하나

“부모가 학대행위자임에도 불구하고 분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경우가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으니 부모에게 더 잘 보여야한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반면 ‘왜 나까지 죽이려고 했냐’고 부모를 원망하는 경우도 있다. 한 3살짜리 아이는 우울증에 걸려있던 엄마가 욕조에 자신을 담그려고 했던 이후 물과 화장실에 대한 공포가 생겨 이를 극복하는 치료중이다. 아이별로 심리상태에 맞는 치료 과정이 필요하다”

-원가정 복귀는 괜찮나

“살해 후 자살 미수 사건이 발생하면 아이와 행위자(가해자), 행위자와 같이 사는 구성원까지 통째로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아이만 치료받아서는 가정의 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됐다고 판단됐더라도 ‘재학대’ 불씨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지금은 법원이 정한 의무 추적 기간(최장 4년)이 끝난 뒤에는 추적관리의 강제성이 없다. 가정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재학대 가능성은 없는지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강제력이 주어져야 한다.”

-해외는 어떻나

“부모와의 분리와 원가정 복귀는 어려운 숙제 중 하나다. 분리 원칙을 적용했던 해외의 경우 아이가 매번 위탁시설을 돌면서 적응하지 못하는 등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래서 철저한 관리가 이뤄진다는 조건 아래 원가정 복귀를 원칙으로 본다.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자살 미수 사건이나 직접적 학대 정황이 없는 경우에는 강제 개입이 어렵다. 미국도 신고가 있어야만 개입하는 것은 한국과 같지만, 학대의 범주를 넓게 인식해 아이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여기면 바로 신고를 한다”


③이구상 중앙심리부검센터 부센터장은 살해 후 자살 사건 유족들에 대한 심리부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개별 사례 관리와 분석이 이뤄져야만 대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부검센터는 최근 ‘살해 후 자살’ 실태 파악에 착수했다.

-심리부검은 왜 필요하나

“핵심은 자살의 경고신호를 조기 발견하는 것이다. 심리부검을 진행해야만 구체적인 조기 경고신호 유형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살해 후 자살 사건은 심리부검 사례가 워낙 적다. 자살한 내 가족이 누군가를 죽이고 죽었다는 사실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책 마련을 위해 심리부검을 의무적으로 진행했던 국가도 있다”

-심리부검은 어떻게 진행되나

“우선 본인 신청이나 경찰, 지역정신건강센터 등을 통해 의뢰된 대상에 대해서 심리부검에 맞는 조건인지를 확인한 뒤 진행한다. 또 정서적으로 완성단계가 아닌 10대는 제외하고, 사망 시점으로부터 3개월이 지난 다음에 상담을 하게 된다. 상담 일주일 뒤 유족 상태가 어떤지 반드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유족들은 심리부검을 진행할 때 고통스런 기억을 쏟아내야 하기 때문에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누군가를 돕기 위한 대책 마련에 참여하고 있다는 인식도 갖게 돼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유족에게 필요한 지원 정보도 제공된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유족 트라우마는 어떻나

“일반적 자살 사건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극단적 선택을 할 경우 남은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주된 감정은 ‘수치심’이라고 한다. 종교적 관점에서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나. 살해 후 자살 유가족의 경우에는 ‘살인 범죄’라는 생각 때문에 죄책감까지 들 수 있다. 가족 내 살해 후 자살 피해자가 여러 명인 경우에는 더 드러내놓고 치료받기가 어렵다”

-위기 감지가 어려운 이유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변으로부터 고립돼 지내는 경우가 많다. 일반 자살의 경우 가족 중에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자녀 살해 후 자살의 경우) 지켜볼 사람이 구조적으로 없다. 일정 기간 이상 월세를 밀린 세입자가 있는 경우 민간 주택 소유자도 신고를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식으로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주면 누군가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④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주변 사람의 사전 위기 신호를 인식해 관심을 가져주고, 전문가에게 연결해주는 ‘게이트키퍼’ 교육이 보다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살해 후 자살 위기 가정의 신호는

“경제적 수준이 갑작스럽게 하락할 때 그 변화의 순간이 곧 위기가 된다. 살해 후 자살 요인은 다양하지만 가족이 극단적 변화에 놓이는 경우면 위기에 더 취약해진다. 경제적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에서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도움을 청하면 삶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확신을 정부와 관련 기관, 언론이 계속 줘야 한다. 쉽게 손 내밀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살해 후 자살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정신과적 문제는 해결할 수 있나

“병원에서 20년간 근무하면서 ‘가족과 다 같이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거의 매일 만났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겨 사망한 경우는 못 봤다. 살해 후 자살을 생각하는 것과 실제 실행에 옮기는 것은 다르다는 의미다. 일단 병원과 같은 치료 서비스 안에 들어오면 자살률은 낮아진다. 병원에서 우울증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공동체나 시민단체와 연계하는 작업도 이뤄진다. 현실의 문제가 당장 100% 해결되진 않아도 누군가가 함께 방법을 찾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책을 제안한다면

“2019년 대한민국은 핵가족화로 가정이 해체됐지만 이를 보완할 공동체는 아직 만들어지기 전이라고 볼 수 있다. 위기를 감지할 가족 구성원이 줄어든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질병 등으로 위기를 겪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물어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결과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위기신호를 감지하는 ‘게이트키퍼’를 양성해 해당 가정을 위한 전문 서비스 체계와 연결해줘야 한다. 정부가 아무리 투자하고 대책을 내놔도 주변과 연결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해외는 어떻나

“서구에서도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발생한다. 미국에서 사건 발생 이후 신체·심리 부검을 같이 해봤더니 80% 이상에서 ‘정신병리가 심각했다’는 보고가 있다. 미국은 모든 자살 사건에 대해 검시관이 신체·심리 부검을 같이 한다. 이후 검시관은 유가족 동의를 얻어 경찰, 사회복지사, 의료진 등을 모두 만나고 지역사회의 주요 인사들과 모여 ‘해당 사례를 막을 방법’에 대해 토론 한다. 한 사람의 사건에서 끝내지 않고 재발을 막는 예방책이 나오는 것이다”

이슈&탐사팀=전웅빈 김유나 정현수 김판 임주언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