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방사성 오염물질을 보관했던 자루들이 무더기로 제19호 태풍 ‘하기비스’에 휩쓸려 유실됐다가 대다수가 내용물이 없어진 채로 발견됐다. 오염물질이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정부의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허점이 드러났지만 일본 정부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원전 오염수를 해양으로 방출하려는 시도도 거듭해 국내외에서 우려가 나온다.
일본 후쿠시마현 다무라시는 16일까지 태풍으로 인한 폭우로 유실됐던 방사성 폐기물 자루 19포대 중 17자루를 회수했고, 이 가운데 10자루는 내용물이 없어졌다고 밝혔다고 일본 교도통신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유실된 자루에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오염제거 작업에서 나온 방사성 폐기물이 담겨있었다.
다무라시는 앞서 폭우로 폐기물 자루 임시보관장에 있던 2667자루 중 일부가 인근 하천으로 유실돼 지난 14일까지 7자루를 수거했으며 폐기물은 밖으로 새지 않았다고 밝혔다.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은 15일 “회수된 폐기물은 용기가 파손되지 않아 환경에 영향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16일 환경성과 합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강가 나무 등에 걸린 10자루를 추가 발견했다. 문제는 이 자루들에서 폐기물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국은 내용물 유출로 결론지었다. 폐기물은 인근 후루미치가와 등을 거쳐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자루에는 최대 1.3톤의 폐기물이 담겨 있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최대 13톤이 유실됐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이번에는 폐기물 유출이 확인됐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주장을 고수한다. 환경성과 다무라시는 폐기물 자루 임시보관장과 강 하류의 공간방사선량을 조사했지만 “문제가 없는 값”이라고 밝혔고, 강물의 방사능 농도도 조사했지만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폭우로 강물이 빠르게 흘렀던 점을 고려하면 이미 폐기물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은 바다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인근 지역의 방사선량만 측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방사성 폐기물 외에도 맹독성 물질인 ‘사이안화나트륨’이 유출돼 주민들에게 대피 경고가 나왔다. 지지통신과 산케이신문은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에서 강이 범람해 인근 공장의 사이안화나트륨이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사이안화나르륨은 매우 독성이 강한 염으로, 산에 의하여 분해돼 독성이 있는 사이안화수소(청산)를 발생시킨다.
일본 당국의 방사성 폐기물 등 위험물질 관리 부실이 여실히 드러난 가운데, 일본에 또 폭우가 쏟아질 것으로 예보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기상청은 18~19일 이틀간 동일본과 도호쿠 지방을 중심으로 저기압골이 형성돼 많은 비가 한꺼번에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17일 예보했다.
이런 가운데 원전 오염수의 해양방출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나왔다. 후케다 도시오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 위원장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오염수 방출 기준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보수적이라며 이 기준만 지키면 “당연히 신체에 영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 각지에서 삼중수소(트리튬)가 포함된 물을 바다에 배출하고 있는 다른 전력회사들이 동업자로서 도쿄전력을 응원하는 취지로 방출 기준이나 동의여부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도 말했다. 교도통신은 “도시오 위원장은 과거부터 오염수 농도를 낮춰 해양 방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며 “이전보다 한 걸음 더 문제제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