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이 중국 베이징(북경지원)으로 파견보낸 단 1명의 직원에 올해 3억3000만원의 예산을 배정해 ‘황제 근무’를 용인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용처가 불분명한 ‘기타지출내역’만 9000만원에 달한다. 그동안 ‘북경지원장’으로 파견된 연구원이 대부분은 한중 통상·중국 산업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도 예산 낭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북경지원을 전임 기획조정본부장·기획조정실장 전관예우를 위한 ‘어학연수지’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산업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연구원은 올해 북경지원에 1명의 직원을 파견하며 3억3000만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본예산 2억4900만원에 지난해 이월액 8100만원을 더한 액수다. 산업연구원 북경지원은 2005년부터 중국의 산업별 네트워크 구축 및 유지 등 중국 현지 업무를 수행토록 만든 해외 파견지다. 보직 임기는 2년으로 중국의 경제, 산업, 기업 정보를 수집해 보고서 등을 작성하고, 중국과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토록 각종 대외 업무도 해야 한다.
북경지원은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2억3300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무실(4200만원)·관저(2100만원) 임차료, 현지 채용 인건비(1500만원) 등을 제외하고도 집행액의 75%(1억7400만원)가 지원장 1명을 위해 지출됐다. 올해 9월까지 지급된 재외근무수당만 4200만원에 달한다.
사용처 불명확한 지출도 있다. 지난 9월까지 9000만원 상당의 ‘기타지출내역’이 있는데 이 예산은 지원장이 스스로 전결해 지출할 수 있는 돈으로 알려졌다. 산업연구원 노조가 올해 국정감사에 앞서 기타지출내역의 정확한 사용처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산업연구원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는 상황이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2년간 인건비가 5억원 정도가 부족해 퇴직급여충당금에서 빼 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구원들에게 줄 인건비가 부족한 상황인데도 매월 보고서 1건만 만들면 되는 자리에 과도한 예산이 지출되고 있다고 지적이다.
북경지원장 업무 수준이 집행되는 예산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는 비판도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북경지원 주요 업무는 ‘중국산업경제브리프’라는 중국 산업 동향 간행물을 매월 1회씩 40여쪽 분량으로 발간하는 것이다. 추 의원은 “산업연구원 내부에서도 연구원을 따로 중국에 파견보내지 않아도 작성할 수 있는 수준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 1월 산업연구원의 자체 정기 감사 결과에서도 북경지원에서 정례 동향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바 있다”고 말했다.
비전문가인데도 북경지원으로 파견되고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그동안 북경지원장으로 파견된 6명 중 단 1명만이 ‘한중 통상산업’을 전공했다. 나머지는 지역경제나 산업조직, 벤처기업혁신, 지역투자를 전공한 전 고위직이었다. 2005년부터 별도의 공모 없이 파견자를 뽑았다가 올해 들어서야 공모절차를 진행한바 있다. 지난 9월부터 북경지원장으로 나간 박모씨도 전임 기획조정본부장이었다. 박씨가 공모에 지원할 때 제시한 중국어 능력 수준은 ‘ 올해 1월부터 들은 중국어 회화 관련 온라인 강의’였다.
추 의원은 “그동안 북경지원장으로 파견된 인사를 보면 전임 기획조정본부장, 기획조정실장이었다. 일종의 ‘전관예우’로 북경지원을 운영해 호화 어학연수를 보낸다는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